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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불평등도 부정부패도 해결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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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민자, 자원의 저주, 에너지 등

세계 각국의 골칫거리

지혜롭게 해결한 국가들 이야기

한국은 ‘중진국 함정’ 극복 사례로




한겨레

픽스
조너선 테퍼먼 지음, 이경식 옮김/세종연구원·1만8000원


안녕들 하십니까? 사는 건 좀 어떠십니까? 불안하신가요? 만일 그렇다 하더라도 외로워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니까요.

미국의 국제관계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편집자 조너선 테퍼먼이 쓴 <픽스>의 부제는 ‘침체하는 세상에서 국가들은 어떻게 생존하고 번성하는가’다. 이 책의 서문에 따르면 요즘 미국 청년 세대 가운데 자기가 평생 동안 벌어들일 예상 수입이 자기 아버지의 수입보다 더 많으리라 예상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지금 한국의 청년 세대 역시 다르지 않으리라.

바닥을 쳤다, 그러니 이제 반등이 시작되지 않을까? 한국 집값은 ‘결국은 오른다’는 방향성을 잃지 않은 듯 보이지만, 세계 경제 전망은 그렇지 않다. 프랑스 파리의 샤를리 에브도 총기난사 사건(2015년)을 비롯해 이슬람국가(ISIS)의 테러가 잇따르면서 경제뿐 아니라 관용이라는 가치 역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중이다. 테퍼먼은 문제들의 밑바닥에 공통적인 문제가 놓여 있다고 판단하고, 그 해결법을 제안하는 <픽스>를 썼다. “어떤 문제든 해결책은 존재한다.”

<픽스>가 논하는 10가지 문제는 이것이다. 불평등, 이민자 혹은 난민, 이슬람 극단주의, 내전, 부정부패, 자원의 저주, 에너지, 중진국 함정(한국의 사례가 언급된다), 마지막 두 가지는 정치적 고착을 심도 깊게 다루는 데 할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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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린 어페어스> 편집자 조너선 테퍼먼은 그의 저작 <픽스>에서 불평등, 이민자 혹은 난민, 이슬람 극단주의, 내전, 부정부패, 자원의 저주, 에너지, 중진국 함정 등 여러 문제들의 밑바닥에 공통적인 문제가 놓여 있다고 판단하고, 그 해결법을 제안한다. 트위터 갈무리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유의 책에 직업 경험으로 아는 사례가 등장하고 그 분석이 동의할 만하면, 그 책의 ‘내가 모르는’ 부분도 신뢰할 수 있을지 판단하기가 약간은 쉬워진다. 8장 ‘기적을 이루어라―한국은 어떻게 해서 경제성장을 줄기차게 이어가고 있을까’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이유다. “모든 나라의 내전은 참혹하지만, 한국전쟁은 특히 더 그랬다. 일본이 남겨두고 떠난 모든 것이 3년 만에 파괴되었다.” 한국은 중진국 함정(반짝 성장을 기록한 뒤 멈추거나 오히려 퇴보)에 빠진 다수의 국가들과 달리 50년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 세계 7위의 무역국이 되었다. 제2차 석유파동 직후의 1980년과 아시아가 금융위기를 맞았던 1998년에만 경기가 후퇴했을 뿐이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표현과 달리, “한국의 성장에는 마술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 50여년에 걸친 긴 ‘성공담’을 테퍼먼은 개발독재와 민주화, 자유화로 나누어 설명한다.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해 국제통화기금(IMF)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이 시행되던 시기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사에 대한 분석은 이렇다. “국민에 의한 정치, 국민이 주인 되는 정치”라는 취임사는 대중추수주의적 정책으로 이어져 위기를 심화시키리라는 예상을 낳았지만 그 결과는 재벌개혁이었다. 국가의 강력한 개입이 올바른 조건하에서 이루어진다면 경제에 강력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테퍼먼은, 한국 정부가 여전히 기업을 통제하고자 하는 점이 앞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재벌은 여전히 지나치게 강력하며, 인구는 노령화되고, 이 책이 쓰이던 때만 해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둘러싼 스캔들이 한국인들의 불만을 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모든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경쟁할 수 있도록 개방된 사회”로 진화한 점이 마지막 세번째 성공의 비밀인 자유화다. 자유화에 대한 상찬이 중국 정부에 대한 일침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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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20일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 총재와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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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스>는 브라질, 인도네시아, 르완다, 싱가포르, 보츠와나, 미국, 멕시코 등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해법을 찾고자 노력하지만, 현대사회에서 한 국가만의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는 점은 깊게 다루지 않는다. 즉, 중진국 함정이나 자원의 저주(지하자원 개발이 부정부패와 내전 등의 이유로 가난한 나라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등의 현상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과 무관한 현상일 수 없다. 더불어, 책 초반에 브라질의 사례를 통해 분석되는 불평등의 문제는 극빈층을 구제하는 문제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 미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헤지펀드 매니저 25명이 벌어들이는 돈은 미국의 유치원 교사 15만8천명의 수입을 다 합친 것보다 많다. 세계적으로 보면 상위 1퍼센트의 인구가 나머지 99퍼센트 인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다. 경제성장이 불평등을 해소하리라는 기대는 사라졌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불가능해 보이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 그 과정에는 한두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한 사회의 신뢰와 지지가 필요하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배울 수 있다.

이다혜 작가,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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