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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왜 회장님과 알바생의 1분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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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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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마르크스 경제학으로 본 자본주의 사회의 시간 싸움
류동민 지음/휴머니스트·1만4천원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은 너무 당연해서 굳이 곱씹어볼 필요조차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한번 더 뜯어보자. 1분이란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것인데, 왜 감옥에 있는 재벌 회장님과 야근도 불사하는 외주하청노동자의 월급은 몇백배의 차이가 나는 걸까? 똑같이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한 사람은 통근 시간이 30분밖에 걸리지 않고 또다른 사람은 2시간이 걸린다면 두 사람의 ‘노동시간’을 과연 같은 가치로 매길 수 있을까?

마르크스 경제학자인 류동민 교수(충남대)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틀을 빌려 ‘시간은 돈’이라는 명제를 해부한다. 마르크스가 ‘자본’을 열쇳말 삼아 상품·화폐·자본의 생산과 발달, 필요노동과 잉여노동 사이에서 벌어지는 착취, 자본과 임금노동의 관계 등을 설명한 반면, 지은이는 ‘자본’ 대신 ‘시간’을 주어로 놓고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한다. ‘생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당연한 사실을 실마리로 ‘자본주의적 상품이 생산될 때 시간은 어떻게 조직되고 관리되며 구조로서 작동하는가’를 풀어내는 것이다. 이는 시간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노동생산성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의 시도는 끊임없이 스패너를 조이는 <모던 타임스>의 찰리 채플린이 그러하듯 ‘텅빈 시간’을 강제한다. 노동시간엔 권력관계가 반영돼있다. 담배 한 개비 피우는 시간의 직급별 기회비용을 계산해서 회사 벽에 붙였다는 재벌 기업의 이야기는 높은 자의 시간과 낮은 자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방증한다. 자본주의가 노동과 상품을 끊임없이 화폐 형태로 변환시키는 무한의 순환운동인 것처럼, 시간 역시 시장에서 화폐로 재현되며 가치가 매겨진다. 돈이 되지 못하는 시간은 여가를 얻는 대신 일을 했다면 벌 수 있었을 소득, 즉 기회비용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자본은 또한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을 잘개 쪼개 의미를 부여하고 밀도를 높인다. ‘프로’가 되려면 시간관리기법이 중요하다고 꼬드기며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시간이 얼마나 밀도있고 가치있는지 입증하도록 만든다. 돈이 되는 시간, 돈을 만드는 시간 즉 ‘자본의 시간’은 한층 더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스마트폰 등 통신수단의 발달로 노동자들은 먹고 쉬고 놀아야할 때조차 업무 지시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자본 축적의 과정인 착취는 노동자가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보다 노동자가 일한 시간이 더 많은 잉여노동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 노동시간의 차이가 없어진다고 해서 바람직한 사회는 아니라고 말한다. 착취 없는 사회는 성장률이 0%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착취를 없애자고 외치는 대신 ‘나의 노동시간’을 통제하는 강력한 힘을 어떻게 배분·조정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즉, “잉여노동시간의 결과인 잉여생산물을 어디에 얼마나 소비하고 투자하는가를 사회적으로 결정하는 방법”, 즉 민주주의의 원칙이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발전으로 인한 노동시간 단축이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고 하더라도 그 시간을 질적으로 통제하는 문제는 더 중요해진다. 노동자의 자율성을 찾아나가는 일, ‘시간의 민주주의’가 절실한 지점이다. 지은이는 시간의 민주주의는 실현불가능한 유토피아가 아니냐는 질문에 이처럼 답한다. “그래도 인간답게 사는 꿈을 놓쳐선 안된다. 우리가 영원한 사랑을 꿈꿀 때 비로소 불완전하고 덧없는 사랑이라도 지속될 수 있기에.”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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