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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뉴스+] “모든 걸 걸어야 하는 피해자, 지원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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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자 보호와 성폭력 근절책/얼굴 공개 후 폭로… 생계 등 달려/가해자 반드시 합당한 처벌 받아야

세계일보

문화계 성폭력은 파렴치한 개인의 범죄일 뿐 아니라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문화산업의 특성 자체가 소수에 권력이 집중되는 승자독식인데다 도제식 문화, 좁고 폐쇄적인 업계, 인맥과 평판에 기대 돌아가는 산업 구조, 역할·나이에 따른 위계는 권력형 성범죄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영화계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했던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는 “문화계의 경우 성폭력 피해와 얼굴을 공개할 경우 생계 등 모든 걸 걸어야 한다”며 “‘누가 그런 이미지의 배우를 써주겠느냐, 현장을 폭로한 스태프를 써주겠느냐’고들 한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은연 중에 ‘쟤는 그랬던 여자, 배우들은 다 똑같을거야’하는 대중의 시선, 다른 배우에게 피해가 갈까 하는 우려가 있어서 피해자들이 선뜻 나서기 어렵다”며 “일반 회사와 달리 형식적 구제 절차가 없는 것도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를 타파하려면 현장에서의 피해자 지원과 연대, 인식 개선이 필수적이다.

관계자들은 그렇기에 이번 ‘미투’ 운동에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사무처장은 “요즘 전화상담을 하다보면 서 검사 폭로 후로 그에 대해 얘기하시는 분들이 심심치 않게 있다”며 “안태근 검사·이윤택이 어떻게 처리되는 지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고 이들에 대한 처리가 수많은 무명의 피해자·가해자에게 모델이 돼 버렸다”고 전했다. 송 사무처장은 “끝까지 진상조사하고, 처벌해야할 경우 봐주기식이 아닌 합당한 징계여야 한다”며 “우리 사회가 성폭력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이런 사건을 통해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협회에서의 제명, 조직 해체 같은 잘라내기식 처리로는 부족하다”며 “문체부가 신고센터 설치·전수조사 등의 대책을 내놓았는데 그간 신고센터가 없어서 신고를 못 했는가 되돌아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나희경 페미씨어터 대표 역시 “이번에 확실히 법적 처벌이 이뤄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좋은 선례가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 대표는 또 “근본적으로는 나이·역할에 따른 위계가 없어져야 한다”며 “현장에서는 연출이 대부분 최상위 권력을 갖고 나이 많은 배우, 경력 많은 스태프 식으로 위계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박모 배우는 이에 대해 “대체로 연극영화과 학생들은 대학교에서 상하관계를 통해 교수님·연출님의 말이 법이라고 4년 동안 훈련된 상태로 연극계에 나오게 된다”고 밝혔다.

성폭력 고발 피해자들이 겪는 큰 산 중 하나는 명예훼손을 빌미로 한 가해자의 맞고소다. 송 사무처장은 “지난 10년 간 이런 경향이 형성됐다”며 “성폭력에 문제제기를 하면 명예훼손으로 입을 막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형사재판부에서는 성폭행·성희롱 사건을 엄청 보수적으로 판단하기에 처벌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 ‘명예훼손으로 고소되더라도 나는 차라리 성폭력 사실을 알리겠다’는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을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송 사무처장은 “성폭력 사건의 형사상 절차가 끝날 때까지 피해자를 무고로 기소하지 않도록 하는 법안이 제출된 바 있다”고 말했다.

송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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