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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영화 `리틀 포레스트` 주연 충무로 샛별 김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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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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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전 서울 삼청동 한 카페. 날씨는 한결 포근해졌지만 배우 김태리(28)의 마음 만큼은 체감 온도가 영하였다. 최근 연극계 성추행·성폭행 파문들이 안겨준 거대한 충격 때문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로 스크린에 데뷔하기 전, 3년여 간 연극판을 누벼왔던 그다.

기자와 마주 앉은 김태리는 "오는 길에 관련한 글을 하나 읽었다"고 고백했다. 오동식 연극연출가 겸 배우의 페이스북 폭로글인 것으로 짐작이 갔다. "너무나도 참담해요. 제가 극단생활을 했고, 친한 선배님들, 동료분들이 주변에 계시잖아요. 그래서 더더욱 남일 같지 않고 가깝게 느껴져요." 그때 그의 동그란 눈망울이 일순간 물기로 일렁였다.

김태리는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일부 시선을 염려하고 있었다. 이들이 겪었을 아픔에 대한 충분한 공감 전에 사태에 대한 분석부터 들어가는 것이 온당하냐고도 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태도로 일관하는 시선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시선들을 마주할 때면 여배우로서 참 아쉽고 슬퍼요."

사실 이날 김태리를 만난 건 그가 임순례 감독의 신작 '리틀 포레스트'(28일 개봉)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집중할 수 있을 지 오는 내내 걱정스러웠다"는 그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다 이내 배꽃같은 미소를 짓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제 영화 어떻게 보셨을 지 궁금해요. 그럼, 이제 질문해주세요.(웃음)"

'리틀 포레스트'는 서울 살이에 지친 혜원(김태리)이 경북의 시골 고향집에 돌아와 시작되는 이야기다. '아가씨'의 하녀 숙희, '1987'의 여대생 연희를 호연한 이 충무로 샛별은 이번엔 제작비 15억원의 소박한 '힐링 무비'로 돌아왔다. 김태리는 "지난해 '1987'과 동시기에 찍었다"며 "큰 영화 작은 영화 가리고 싶진 않다"고 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 읽을 때 그저 좋았어요. 보통 여러 가지를 고려하게 되는데, 안 그런 거 있죠. 덮는 순간, 직관적으로 이런 느낌이 들었어요. '아, 좋다···.' '"

극중 혜원은 어디론가 홀홀히 떠난 엄마의 체취를 매순간 느낀다. 엄마는 과연 어디로 간걸까. 하지만 원망하진 않는다. 혜원은 그곳에서 사계절을 나며 떠난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쓴다. 그런 혜원의 곁에는 오랜만에 재회한 친구 재하(류준열)와 새침때기 은숙(진기주)이, 눈처럼 새하얀 강아지 오구가 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는 소박하고 정겨운 일상들이 있다. 처음엔 조금 어색했던 이들도 시간이 흐를 수록 다시금 단짝이 된다. 극중 배역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도 그랬다고 한다.

"영화가 겨울부터 출발하죠. 계절도 순서대로 찍었어요. 1년 간 47회차를요. 보시면 시간이 뒤로 갈 수록 서로 더 친해진 느낌일 거에요. 실제로도 그랬어요. 후반부 토마토 밭에서 찍을 땐 저희 진짜 소꿉친구 같았어요. 어제 시사회 때도 셋이 또르륵 앉아서 보았죠. 서로 툭툭 치면서 '야야, 너 나온다!' 그러면서요.(웃음)"

'리틀 포레스트'는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하시모토 아이가 주연을 맡아 '여름과 가을' '겨울과 봄'이라는 두 편의 영화로도 먼저 제작됐다. 주인공이 스스로를 치유하고 조금씩 성장한다는 얼개는 같지만, 사계절을 103분에 밀어넣었다는 점에서, 한국만의 그윽한 정취가 오롯이 숨쉰다는 점에서 다르다.

원작처럼 혜원은 스스로 일군 작물을 하나하나 거둔다. 그리고 정성스레 요리한다. 겨울에는 배추 된장국을 끓이고, 봄에는 아카시아 꽃을 튀기며, 여름에는 콩국수를 만든다. 이밖에도 시루떡, 파스타, 떡볶이, 밤조림, 오코노미야끼 등 먹음직스런 음식들의 성찬이다. 카메라는 이 모든 음식을 먹는 혜원을 가만히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아, 내가 이렇게 살아있구나'를 감각하려는 것일까. 그 느낌을 전하니 김태리가 맞장구를 친다.

"맞아요, 도심에 살다 보면 자주 잊게 되는 뭔가를 혜원은 감각하고 싶었을 거에요. 엄마에 대한 기억도 되새기면서요. 그렇게 커가는 걸까요? 저는요, 우리 내면에 있는 '우물'이 조금씩 넓어지게 해주는 영화가 좋아요. '리틀 포레스트'도 그런 영화이면 좋겠어요.(웃음)"

배우는 영화라는 꿈을 찍고, 그 꿈을 먹으며 자란다. 이제 겨우 3년 차인 이 신인은 앞으로 얼마나 더 자랄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충무로에 김태리가 있다는 건 커다란 축복이라는 점이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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