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7 (월)

위로와 휴식 가득한 ‘김태리판 삼시세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영화 ‘리틀포레스트’ 28일 개봉

버거운 서울 떠나 귀향한 20대

밥짓고 감자심고 들판 내달리며

사계절에 녹아 인생에 ‘쉼표’ 선물

조미료 안쓴 밥상 같은 힐링영화


한겨레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도시의 팍팍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밥’이란 그저 ‘생존을 위해 때우는 한 끼’가 된 지 오래다. 여기 “배가 고파서” 귀향을 했다는 한 젊은이가 있다. 그가 밭에서 배추를 뽑고, 된장을 풀고, 고슬고슬하게 밥을 지어 소박한 한 끼 상을 차리는 것만 봐도 왠지 모르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따뜻한 기운이 샘솟는다. 더구나 그 한 끼를 함께 나눌 정겨운 고향 친구도 있잖은가.

임순례 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복귀작 <리틀 포레스트>(28일 개봉)는 말 그대로 관객에게 103분 동안의 ‘작은 힐링’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자극적인 엠에스지(MSG) 한술 없이도 입에 착 붙는 고향의 맛처럼.

한겨레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시험도, 연애도, 아르바이트도 하나 되는 일 없는 혜원(김태리)은 버거운 도시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학창시절 오랜 단짝 친구였던 은숙(진기주)과 재하(류준열)를 다시 만난 혜원은 고향의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을 거치며 좋은 사람들과 맛난 음식을 나눈다.

영화는 특별한 ‘하이라이트’랄 게 없다. 예쁜 김태리가 아름다운 시골에서 사계절 농사를 지으며 소박한 밥을 지어 먹는, ‘김태리판 삼시세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리틀 포레스트>는 ‘정겨운 귀농생활에 대한 환상’이나 심어주는 영화가 아니다. 혜원은 가진 것 없이도 충만한 고향의 삶 속에서도 자신이 두고 온 도시의 삶을 돌아보고 반추한다. 그리고 문득문득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피해, 혹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는가.’ 평범한 직장생활을 내려놓고 “남이 아닌 내가 결정하는 삶을 살고 싶어” 귀향해 농사를 짓는 재하의 모습은 그런 혜원에게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게 한다. 고향에서의 사계절은 지친 혜원의 마음을 치유하고, 혜원은 비로소 ‘아주 심기’(더는 옮겨 심지 않고 완전하게 심기)를 결심한다.

한겨레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의 중요한 축은 ‘음식’이다. 오래된 시골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쌀독에 한줌 남은 쌀을 씻어 밥을 짓는 혜원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그가 해 먹는 음식을 통해 삶의 쉼표를 점점이 찍는다. 남은 밀가루를 반죽해 만든 수제비, 쑥을 뜯어 넣고 찐 시루떡, 밭에서 기른 채소가 어우러진 파스타, 탐스러운 아카시아꽃 튀김, 설탕을 듬뿍 넣어 조려낸 달콤한 단밤 조림…. 음식은 또한 수능을 끝낸 혜원을 두고 “자신을 찾아 떠난” 엄마(문소리)와의 기억을 환기하는 매개다. 혜원은 엄마에게 배운 음식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만들며,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가 남긴 ‘유산’을 깨닫게 된다.

한겨레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김태리는 소박한 혜원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한다. 툭툭 내뱉는 투박한 말투도 정겹다. 감자를 심고, 옥수수를 꺾고, 마루에 누워 조용히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자전거를 타고 황금빛 들판을 내달리는 김태리의 모습은 고향의 사계절에 오롯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물론 ‘몸뻬’를 입어도 한 폭의 그림처럼 빛나는 외모이기는 하지만. 충무로의 블루칩이 된 류준열, 첫 영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배역에 녹아든 진기주의 연기도 엄지를 치켜들게 한다. 혜원의 보디가드 강아지 ‘오구’의 만화 같은 귀여운 연기는 덤이다.

한겨레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한숨 돌리고 조금 쉬어 가자”며 휴식을 권한다. 강퍅한 서울 삶에 지친 혜원이나 반복적인 회사생활에 진저리를 내는 은숙이나, 그 모든 걸 떠나 고향에서의 삶을 선택한 재하는, 조금씩 변형되긴 했을지라도 현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청춘들의 모습이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버거운 짐을 내려놓고 잠시 어깨를 펴도 좋겠다. 조금은 더딜지라도 그 쉼표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만의 삶의 레시피를 완성할 수 있을 게다.

뱀발: 일본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했으며, 일본판은 2015년 <여름과 가을>, <겨울과 봄> 두 편으로 나눠 만들어진 바 있다. 원작, 일본판, 한국판을 비교해보는 여유도 부려볼 만하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