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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잊고 지내면 목돈 쏠쏠 ‘스텔스 통장’…지점에서만 가입하는 나만의 비자금 ‘그뤠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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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스기’는 적군의 레이더 탐지를 피해 적진으로 침투할 수 있는 첨단 전투기다. 불시에 공격하고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적을 공포에 몰아넣을 수 있는 전략무기로 꼽힌다. 최근 재테크에서 이 무시무시한 ‘스텔스’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스텔스 통장은 본인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든 조회가 안 되는 비밀 계좌다. 다시 말해, 남에게 드러나지 않고 살며시 돈을 쌓아가는 재테크다.

시티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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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계좌라고 해서 불법적인 용도로 활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시길 바란다. 오히려 금융사기 등을 예방하자는 목적으로 나온 상품이다. 이 계좌는 인터넷이나 모바일에서 조회가 안 된다. 공인인증서를 들고 접속해도 뜨지 않는다. 배우자조차 가족관계 증명서나 공인인증서를 들고 은행 창구를 찾아가도 잔액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낼 수 없다. 사실상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내 계좌를 들여다볼 수 없는 셈이다. 심지어 스텔스 통장을 개설한 지점에서만 금융거래가 가능한 경우까지 있다. 이런 이유로 스텔스 통장을 ‘나만의 비자금 통장’으로 부르기도 한다. 스마트폰으로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대라지만 이 통장을 개설하려면 은행을 직접 찾아가야 한다.

번거로워서 사람들이 외면할 것 같다고? 오히려 반대다. 16개 은행 30여 개 스텔스 통장 계좌는 지난해 6월 기준 28만 개가 넘어섰다. 전체 계좌의 0.1% 수준으로, 결코 낮은 숫자는 아니다. 증가 속도가 빨라 2012년 16만 개에서 2015년 18만 개로 늘어났고, 다시 2년 만에 10만 개가 폭증했다. 우리 국민 중 30만 명 가까이 나만의 비자금을 마련해두고 있다는 얘기다. 스텔스 통장 한 개당 100만 원씩만 있다고 가정해도 2820억 원이라는 돈이 비밀리에 숨겨져 있는 셈이다.

스텔스 통장의 이름은 다양하다. 우리은행은 ‘시크릿뱅킹’ 신한·농협은행은 ‘보안계좌’, KB국민은행은 ‘전자금융 거래제한계좌’, 기업은행은 ‘계좌 안심서비스’, KEB하나은행은 ‘세이프 어카운트’라고 부른다. 스텔스 통장을 만드는 방법은 다소 번거롭다. 우선 은행 지점을 방문해야 한다. 따라서 카카오뱅크나 K뱅크 등 지점이 없는 인터넷 은행에서는 만들 수 없다. 지점에서 ‘내 계좌가 조회되지 않도록 설정해달라’고 요청하고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면 끝이다. 예·적금뿐만 아니라 펀드, 신탁, 외화예금 등 모든 금융상품을 스텔스 계좌로 만들 수 있다. 은행 지점에서만 업무를 하다 보니 영업시간이 아니거나 주말에는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스텔스 통장 활용법은 다양하다. 최고의 강점은 돈을 쉽게 ‘건드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모바일이나 인터넷으로 은행거래를 하다 보면 굳이 쓰지 않아도 될 곳에 돈을 낭비하는 경우가 생긴다. 스텔스 통장은 은행을 직접 방문해야 한다는 ‘번거로움’ 때문에라도 돈을 쓰지 않고 모으게 된다. 성과금이나 소득공제금 등 비정기적인 목돈을 쌓아둘 때 좋다. 때론 잊고 지낸 돈이 훗날 큰 효자 노릇을 하니까.

보이스피싱 등 금융범죄를 피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실제 통장이 만들어진 목적도 보안이었다. 지난 2007년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가 심해질 때 금융권에 등장했다. 출범 초창기에는 입·출금이 불편해 일명 ‘멍텅구리 통장’으로 불리며 외면 받기도 했다. 그러나 보안이 취약해진 모바일 시대에 역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스텔스 통장의 절반 정도가 여성이 사용한다는 점도 이채롭다. 남편의 비상금 통장이 아닌 여성의 ‘시크릿 통장’으로 재발견된 것이다.

스텔스 통장을 만들고 싶은데 지점을 직접 찾아가는 게 귀찮다면 ‘계좌 감추기 서비스’를 활용하면 된다. 이 서비스는 스텔스 통장이 아닌 일반 계좌다. 하지만 모바일뱅킹이나 인터넷뱅킹에서 계좌를 감출 수 있는 기능이 있다. 평소에는 계좌를 숨겼다가 금융거래가 필요할 때 잠시 서비스를 해제하면 된다. 계좌 숨기기 기능은 인터넷뱅킹인 K뱅크에서도 가능하다. 혹시 스텔스 통장은 금융당국으로부터 추적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불법자금 세탁 방지, 세금 징수 등을 위해 금융 당국은 당신의 금융 정보를 꿰고 있다.

[글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 사진 로이터]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17호 (18.02.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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