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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Citylife 제617호 (18.02.27일자)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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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 대한 처연한 성찰 <호텔 캘리포니아>

시티라이프

김수련 지음/헤르츠나인 펴냄


1974년 발매된 이글스(Eagles)의 노래는 소설 <호텔 캘리포니아>의 주인공 서영에겐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을 뜻한다. “나갈 수 없으면, 문을 만들어야겠지. 문을 만들 수 없다면? 그럼 그곳에 영원히 있어야 할 거고.”(본문 中) 아이 유산 후 계속되는 임신 실패로,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주인공 서영.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세상을 등진 서영과, 그녀가 남긴 배아로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갖고자 하는 남편 재민의 이야기가 소설 <호텔 캘리포니아>의 중심축이다.

소설은 서영의 이메일 친구 채린이 대리모가 되며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는 ‘재민 그리고 채린’ 3부를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빈 창의 깜빡이는 커서에 맞서 7년간 ‘생명’과 ‘윤리’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한 작가 김수련이 길고 긴 수태 기간을 끝내고, 장편 소설을 몸 밖으로 내어놓았다. 떠들썩한 사건보다는 캐릭터의 심리를 나선형 계단을 걸어 내려가듯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2000매에 달하는 소설 한 권을 뚝딱 정신 없이 읽어 내려가게 된다. ‘이것은 단지 종이로 만든 달이에요. 하지만 당신이 나를 믿으면 진짜가 되지요.’ 쿨한 관계라고 믿었으나 결국은 재민을 사랑하게 된 순간에 유리가 흥얼거리는 엘라 피츠제럴드의 ‘It’s only a Paper Moon’, 서영의 자살 장면에 등장하는 라디오헤드의 ‘How to disappear completely’. ‘종이 한 장만 더 얹어도 주저 앉을 듯한’ 주인공들의 일상을 대변하는 노래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저자는 그 곡들로 하여금 주인공들이 하나의 문에서 다음 문으로 넘어가는 키 역할을 하도록 만든다. 독일 유학 시절 교육학과 철학을 공부한 저자는 자신이 철학과 세미나에서 목도한 ‘트롤리 딜레마(망가진 전차가 달려올 때 좀 더 적은 수의 사람이 죽도록 레버를 당겨야 하는 선택의 딜레마)’에서 소설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전한다.

‘과연 우월과 열등의 기준으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는가? 신이 아닌 인간이 생명의 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그녀로 하여금 ‘소설’이라는 외피를 빌어 생명 존중과 윤리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 것이다.

결말을 향해 내달리다 보면 작가가 얼마나 오랫동안 서영과 재민의 입을 통해 혼자 끊임없이 묻고 답해 왔을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인공 수정과 잉여 배아, 대리모라는 흔치 않은 소재로 생명에 대해 이렇게 끈질기게 접근한 소설이 있을까?”라는 허진호 감독의 감상평, “등장인물들의 작은 몸부림 하나 놓치지 않고 안아주며 위로하는 작가는 역설적이게도 죽음으로 생명을 드러낸다”고 밝힌 시인 강민 선생의 추천사에도 생명에 대한 저자의 치열한 성찰이 관찰된다.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어디까지인가’라는 거시적인 질문 이면에 흐르고 있는, 살아있는 작고 연한 살을 가진 생명체를 바라보는 작가의 따스한 시선을 발견할 수 있는 소설이다.

▶미친 결정, 미친 사업 <호암의 마지막 꿈>

시티라이프

유귀훈 지음/블루페가수스 펴냄


1983년 3월 ‘도쿄 선언’으로 삼성이 반도체사업 진출을 공식화할 때 반도체 선발 국가들은 비웃었고, 국내 언론도 비관적이었다. 일본 미쓰비시연구소의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작은 변수에도 시장이 출렁거리고, 호황과 불황이 파도치듯 반복되어 ‘미친 사업’이라 불리는 반도체사업. 그리고 당시 73세였지만 ‘내가 반도체사업본부장’이라며 앞장섰던 호암 이병철. 이 책은 그런 호암이 반도체 사업에 진출해 우여곡절을 겪고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기까지의 10년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해석과 개입을 자제하고, 반드시 연표와 연대기로 팩트 텔링을 한 후 스토리텔링을 완성해냈다. “부정이나 이상한 일에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눈앞의 손익을 우선해 거짓말을 거듭하고 대충 얼버무려 넘기면 반드시 ‘청구서’가 돌아온다.” 일본의 4대 증권사 야마이치증권사의 100년사를 접한 뒤부터 기업사를 ‘홍보’가 아닌 ‘기록’의 관점으로 접근하게 되었다는 기업사 작가 유귀훈이 호암 이병철 회장과 삼성의 반도체사업 진출기를 103명의 관계자를 직접 만나 기록한 책이다. 호암 타계 3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책으로 블루페가수스 출판사의 ‘창업주의 기업가정신’ 첫 번째 헤리티지 시리즈다. 영웅담이나 과장된 수식, 자의적 해석이 아닌 ‘실록’ 차원에서 기업의 성공과 실패를 객관적으로 기록해 업의 본질을 되돌아보는 것이 시리즈의 목표다.

[글 박찬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17호 (18.02.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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