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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엄마와 아이가 함께 성장한다1 독서의 연장선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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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육아 덕분에 독서를 시작했다. 그리고 독서를 통해 필사라는 매력에도 빠질 수 있었다. 하루 수십 번 감정이 오락가락하던 엄마인 내 모습이 무서워 책이라도 보면서 어떻게든 정신 차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런 나에게 육아선배들의 공감과 위로는 글자 그 이상의 의미였고, 심리서와 철학책 속 문장들은 나를 자책하지 않게 해주는 고마운 처방약이었다.

그래서 귀한 글귀, 마음을 후벼 파는 문장이 나오면 잊기 싫어 형광펜을 그었고, 여백에 생각을 정리해가며 수험생의 마음으로 독서를 했다. 내가 적용할 수 있는 부분, 마음을 다잡을 수 있던 문장들은 그대로 종이에 옮겨 써 집안 곳곳에 붙였다.

매일경제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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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적어놓은 글귀들을 반복해서 보고 읽는다는 것, 이것은 마음가짐을 수시로 점검 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글자를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며 문장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종이에 글자를 적어가며 집안일을 하느라 무뎌진 손의 감각을 되살릴 수도 있고 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는 재미도 빼먹을 수 없다. 조용한 시간 필사를 통해 마음속 감성을 두드릴 수도 있다.

옥션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필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만년필의 매출이 2016년을 기준으로 19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그 외의 문구용품인 연필이나 볼펜, 메모지나 다이어리 등도 높은 판매율을 보인다고 전했다. 아날로그적인 감성의 물품들이 같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SNS 안에서 #손 글씨, #필사라는 해시태그가 예전에 비해 많이 증가했다는 보도, 필사를 위해 출판되는 다양한 서적들 역시 필사에 대한 관심을 반증한다. 디지털화 되어있던 현대인들의 삶이 아날로그적으로 전환될 수 있는 이 필사는 글자를 베껴 쓴다는 단순함을 넘어 사람의 감성을 두드리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책을 따라 ‘쓰고’,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 ‘행동’으로 옮겨가는 것. 읽고 쓰고 행하는 이 간단한 행동들을 반복하며 독서를 통한 필사를 습관화 하다보면 그냥 따라만 쓰는 것을 넘어 글을 쓰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은 독서를 하는 방법을 두루 읽는 박학(博學), 자세히 묻는 심문(審問), 신중하게 생각하는 신사(愼思), 명백하게 분별하는 명변(明辯), 읽고 행하는 독행(篤行)이라고 말했는데, 선비들이 박학(博學)에만 빠져 다른 것을 가볍게 여긴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양과 질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것인데 ‘필사’를 통해 한 박자 쉬어가다 보면 다산 정약용이 말한 다섯 가지 독서법을 두루 균형 맞추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사’는 글을 쓰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글이 가지는 의미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다. 작가와 일직선상에서 의미와 감정을 교류하고 천천히 음미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자세히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필사는 엄마의 어수선한 내면을 다스리기 위해서도 좋은 방법이지만 아이들이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쓰기시간이 될 수 있고, 덩달아 맞춤법과 다양한 어휘를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다양한 문장 속 구문들을 자주 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문장력 또한 향상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있던 책 속 좋은 문장들을 종이 위에 적어보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작은 포스트잇에 문장을 써서 보이는 곳에 붙여놓거나 보관해도 좋다. 글씨의 모양이나 제대로 된 필기도구를 갖추려는 부담을 버리고 가볍게 시작을 하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으로도 필사를 놀이화시킬 수 있다. 아이가 선정한 최고의 문장 한 줄을 찾아 필사하고 엄마와 그 이유를 이야기 나누는 것 역시 독서의 연장이자 생각을 확장하는 연습이 될 수 있다.

아직 글자가 서툰 아이라면 집에서 흔하게 쓰는 종이호일을 책에 붙여 줘서 글자를 따라 써 볼 수 있게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기 때 보던 보드 북(종이가 조금 두껍고 빳빳한 책)은 종이가 두껍고 글자가 커서 어린 아이들도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다.

고전에 관심이 많은 엄마라면 아이와 명심보감으로 낭독과 필사를 한 번에 할 수도 있다. 비교적 문장이 짧아 낭독하기에도 호흡이 짧고, 필사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다.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쓰고, 읽고, 이야기 나누는 과정을 통해 아이와 엄마는 분명 성장할 것이다. 독서의 연장선, 필사! 엄마와 아이가 재미있게 함께하는 취미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최지은 스피치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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