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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오후 한 詩]사흘 밤낮/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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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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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나무가 상중(喪中)인가 보다

캄캄한 밤이 목련꽃 속으로 들어간다
부고란 봄빛이 죽는 연습을 마치고 꽃무늬를 짜는 일

북극성도 조문을 와서 잠시
목련나무의 몸을 환히 비추기도 했다

이 소식을 듣고 먼 길 온 딱따구리의 곡소리가
봄밤을 흔들었고
지난겨울 내내 나무 허리춤에 몸을 맡긴
청솔모가 눈 비비며 앉았다 가자
몸 뒤척이는 목련나무,
한 잎의 그늘이 하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보인다

바람을 들이고 비를 긋는 구름의 계절이
잠시 몸 뉠 자리도 있었다

꽃 진 자리에서 사흘 밤낮 곡소리가 들린다
마지막 뫼 밥을 올리고
산모롱이를 돌아나가는 새 떼들도 있다

풋잠을 터는 것은 진흙을 씻는 나무뿌리였다
뒷걸음으로 왔다가 되돌아가는 황사가
사라진 날이기도 했다

■봄이 오려면 아직도 몇 밤에 몇 밤은 더 지나야겠지만 그래도 눈길은 자꾸 가지 끝을 향한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이맘때면 가지들마다 한 땀 한 땀 맺힌 도톰한 꽃눈들과 잎눈들 속 세상이 새삼 궁금해 괜스레 그 주변을 맴돌곤 한다. 그런데 그렇긴 한데 목련 앞에서는 가끔 꽃을 기다리는 마음을 살짝 접고 싶을 때도 있다. 두려워서다. 이 세상 그 어느 하얀 빛보다 우아하고 화사했던 목련이 말 그대로 문득 질 때 그 멍든 핏빛들로 가득했던 자리를 다시 마주하는 게 겁이 나서다. 아니 실은 목련이야 한 해가 지나고 나면 다시 피겠지만 비록 멍투성이였더라도 이제 이번 생에서는 영영 멀어지기만 하는 봄날이 내내 사무쳐서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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