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합 적발 '특효약'이지만 대기업 면죄부 논란 끊이지 않아
공정위, 불투명한 제도 운용으로 논란 자초…"원칙 재정립할 것"
'담합' 벌인 유한킴벌리, 본사 면죄부·대리점만 처벌 |
(세종=연합뉴스) 이대희 민경락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의 유한킴벌리 담합 사건 처리 과정에서 생긴 각종 잡음은 '리니언시'(담합 자진 신고자 감면) 제도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갑'인 유한킴벌리는 '을'인 대리점을 배신하고 담합 사실을 신고해 합법적으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처벌 면제 사실과 관련해 위법 당사자와 공정위는 외부에 알리지 못하도록 공정거래법에 규정돼 있다.
따라서 부도덕한 '갑의 배신'은 어지간하면 외부에 알려지기 쉽지 않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처벌하지 않는 이들을 처벌한다는 '이상한' 방식으로 외부에 리니언시 담합 사건을 공표하는 관행을 유지하며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담합 적발에 특효약인 리니언시 제도를 공정위가 운용하면서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오히려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위 |
◇ '죄수 딜레마' 이용 리니언시…'갑을관계' 담합 면죄부
리니언시란 게임이론에 나오는 '죄수의 딜레마'를 이용하는 제도다.
2명의 용의자가 각각 다른 취조실에서 심문을 받을 때, 검사는 그들에게 제안한다.
둘 다 범행을 자백하면 가벼운 형벌을 구형하고, 한 사람만 자백한다면 안 한 이는 무거운 형벌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적어도 상대방보다는 불리한 위치에 처하지 않으려고 차선책으로 범행 사실을 털어놓으려는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리니언시는 이 심리를 담합 적발에 이용한다.
담합 1순위 신고자에는 과징금 전액과 검찰 고발을, 2순위에는 과징금 50%와 검찰 고발을 면제해 준다.
리니언시는 담합 적발에 매우 효과적이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담합의 특성상 '배신자'가 나오지 않으면 사건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실제로 2016년 공정위에 적발된 담합사건 45건 중 27건(60%)이 리니언시를 통한 것일 정도였다.
그러나 리니언시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이유가 어떻든 위법 행위 처벌을 면제한다는 점에서 '정의에 반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2012년부터 2016년 6월까지 리니언시로 기업들이 감면받은 과징금은 무려 8천709억원에 달한다.
면제 과징금이 커 그만큼 담합을 주도한 시장 지배적 사업자들에게 집중해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시장을 좌우하는 대기업이 담합을 주도하다 '자수'하면 끌어들인 중소기업만 죗값을 고스란히 치른다는 것이다.
이번 유한킴벌리의 사례는 여기에 '갑을관계'까지 엮여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가능성이 더 크다.
본사는 리니언시를 통해 처벌이 면제됐지만, 사실상 본사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는 대리점만이 처벌을 받은 것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특수관계인 갑을관계에서 담합이 생겼다면 처벌은 본사가 받아야지 대리점이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 처벌 안 하는데 처벌하겠다고 알리는 공정위
대기업·중소기업 '갑을문화' 만연 (PG) |
리니언시에 대한 비판은 제도가 불투명하다는 데서 더욱 강화된다.
공정거래법은 리니언시 처벌 면제 사실을 위법 당사자와 공정위 직원이 외부에 발설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리니언시 담합 사건을 공표할 때 이상한 관행을 이어나가고 있다.
실상 리니언시로 처벌이 면제되지만,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는 식으로 외부에 알리는 것이다.
국민에게는 과징금 수천억원을 때리고 형사 처벌을 곧 받게 된다는 식으로 알리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신고자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이지만 '허위사실'을 국민에게 공표한다는 점에서 제도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유한킴벌리 건도 마찬가지다. 공정위는 유한킴벌리 본사에 과징금 2억1천1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알렸지만 실제로는 모두 면제됐다.
공정위는 여기에 한술 더 떠 유한킴벌리 실무자 5명을 고발하기로 한 위원회 심의 결과를 아예 보도자료에서 빼버렸다.
법원 1심 판결과 같은 효력을 지닌 위원회 심의 결과를 사실상 '요식 행위'로 취급해 그 결과를 자의적으로 왜곡한 것이다.
공정위는 "실무자의 착오"라고 변명했지만, 리니언시 발설 금지 규정 때문에 제대로 해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역시 유한킴벌리 봐주기 의혹에 대해서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검찰과의 관계도 황당한 상황에 부닥친다. 공정위는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하고서 실제로는 고발장은커녕 아무런 서류도 검찰에 제출하지 않는다. 사전에 양해 정도만 구한다는 설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리니언시의 생명인 예측가능성과 투명성이 공정위의 절차 안에서 제대로 지켜지는지 안팎에서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며 불편한 시선을 드러냈다.
◇ 담합 피해자인 소비자 의사 리니언시 과정에 반영돼야
유한킴벌리 대전공장 |
공정위는 '담합 특효약'이지만 단점이 많은 리니언시 제도를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계속 고쳐나가고 있기는 하다.
2005년 과징금 감면율을 정률로 정했고, 이후 상습 담합자나 늑장 신고자에 대한 감면 혜택도 없앴다.
그러나 담합 유도자나 시장 최대 사업자는 자진 신고 면제 혜택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유한킴벌리 사례처럼 '갑을 관계'에서는 리니언시를 인정하지 않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이러한 지적에 담합을 강요하고서 자진 신고를 하거나, 2개 사업자 담합에서의 자진 신고를 할 경우는 면제 혜택을 주지 않는 식으로 제도를 변경하기도 했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을 많이 하고 검찰이 담합을 적극적으로 수사하는 경향이 있다"며 "검찰은 강제 수사를 벌일 수 있어 상대적으로 리니언시 의존도가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러면 유한킴벌리처럼 불공평한 혜택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담합 처벌이 가능해질 수도 있을 것"이라며 "다만 리니언시는 공정위의 조사 권한과 검찰 관여 정도 등 구조적 설계 등과 직결되는 문제라 현재로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리니언시 결정에 소비자의 참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담합의 실질적인 피해자는 소비자다. 하지만 공정위의 담합 조사와 리니언시 제도 안에는 공정위와 가해자인 기업만 존재한다.
피해자인 소비자의 의사가 어떤 방식으로든 담합 처벌과 리니언시 과정에서 반영돼야 하는 이유다.
공정위는 리니언시의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여나가는 원칙을 재정립할 방침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유한킴벌리 사건과는 별개로 리니언시 제도의 취지와 국민의 알 권리 사이에서 고민이 많다"며 "최근 불공정 위법 행위에 대한 실무자 개인 고발을 강화하려고 하는데 이에 대한 공정위 차원의 리니언시 관련 원칙을 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vs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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