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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팀장칼럼] 이재용 부회장에 던져진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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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이달 5일 오후 4시 40분. 추운 날씨에 외투 없이 흰 와이셔츠, 검은색 양복만 입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구치소를 걸어 나왔다. 350여일 만에 마신 구치소 바깥 공기의 맛을 채 음미할 시간도 없이 그는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에 고개를 숙였다. 이 부회장은 “좋은 모습 보여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1년은 저를 돌아볼 수 있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라고 말한 뒤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이 부회장은 석방된 지 10일이 넘도록 두문불출하고 있다. 자신의 석방 소식에 기뻐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람뿐만 아니라 한탄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삼성이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 지원한 36억원이 뇌물인지는 대법원에서 가려질 것이다. 특검팀은 이 돈이 박 전 대통령의 직무 관련 뇌물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삼성 측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과 관계없이 삼성과 이 부회장에 대한 불신의 무게는 이미 납덩어리만큼이나 무겁다.

삼성에 대한 여론이 안 좋은 것은 물론 이 부회장에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2심 재판부까지 ‘적폐 판사’로 몰리고 있다. 이 부회장이 풀려난 날 한 시민은 2심 재판부에 대해 특별감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고 현재 23만4000여명의 ‘동의’를 받았다.

이 부회장은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작년 12월 27일 항소심 재판 최후진술에서 “실타래가 꼬여도 너무 복잡하게 엉망으로 꼬였다. 바닥까지 떨어져 버린 기업인 이재용의 신뢰를 어떻게 되찾을지 생각하면 막막하다. 엉망으로 꼬인 실타래를 어떻게 풀지도 모르겠다. 언젠간 풀리기나 할 것인가 하는 생각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작년 한 해에만 53조645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한국 기업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 돈은 1분에 약 1억원씩 하루 24시간, 1년 내내 쉬지 않고 벌어야 달성 가능한 숫자다. 전 세계에서 삼성전자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사람들은 삼성전자의 경이적인 실적에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삼성전자를 “존경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할아버지인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은 삼성을 만들고,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사업으로 삼성을 키웠다. 이제 이 부회장이 할 일은 삼성을 국민이 존경하는 기업으로 만드는 일이다.

한국의 삼성과 자주 비교되는 그룹은 스웨덴의 발렌베리(Wallenberg) 그룹이다. 발렌베리 그룹은 1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5대째 세습이 이뤄졌고 스웨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의 삼성 이상으로 크지만, 시기와 질투는커녕 스웨덴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벌어들인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대학, 박물관, 도서관 등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덕이다. 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면서 사치를 자제하고 서민과 거리감을 좁히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 부회장은 구치소에서 보낸 350여일 동안 “그 동안 접해보지 못한 일들을 겪으며 그리고 사회에서 접하지 못한 사람들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소 제가 생각한 것 보다 많은 혜택을 누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또 “우리나라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헌신하고 제가 받은 혜택을 나누는 참된 기업인으로 인정받고 싶었다”고도 했다.

이 부회장이 어떤 삼성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20~30년 후에 내려질 것이다.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돈만 많이 버는 기업이 될지,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기업이 될지는 순전히 그의 어깨에 달렸다. ‘소유권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발렌베리가(家)의 경구를 이 부회장이 곰곰이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전재호 산업부 재계팀장(je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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