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대한 수입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미국이 이번에는 1962년 냉전 시기에 제정돼 사문화되다시피 했던 '무역확장법 232조'까지 꺼내 들었다. 한국산 철강 제품에 최대 53%의 고율 관세를 추가로 매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미국은 현재 한국에 대해 40건의 수입 규제를 진행하거나 조사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유례없는 강력한 통상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일본에는 딴판이다. 지난해 대미 무역 흑자는 688억달러로 한국(228억달러)의 3배가 넘는 일본은 미국의 통상 압박을 피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대미 통상외교 전략의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하다고 조언한다. 허윤 서강대 교수는 "미국의 칼끝이 반도체와 자동차 같은 우리 핵심 수출 제품의 턱밑까지 겨냥하고 있다"면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한·미 FTA 협상 출발부터 삐끗
일본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뉴욕 트럼프타워를 방문하며 적극적인 통상 외교를 펼쳤다. 재계와 긴밀한 협력 체계도 구축했다.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통상정책 수장인 윌버 로스 상무장관의 미·일 교류 단체(재팬 소사이어티) 회장 시절 구축된 재계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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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통상 당국과의 네트워크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협상 전략도 미숙하다. 한국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에 앞서 지난해 8월 서울에서 열린 예비 협상 후 "미국의 요구에 당당하게 맞섰다"고 성과 알리기에 급급했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폐기'를 언급하며 강공에 나서자 주도권을 미국에 내주고 말았다. 안덕근 서울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기술이나 미국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 미국의 지도자와 다른데도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통상교섭본부 조직 정비도 제대로 안 돼
산업통상자원부는 철강 제재가 알려진 지난 17일 철강 업체를 모아 놓고 민관합동 대책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회의 결과는 "미국 정부의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민관이 함께 미국 정부, 의회, 업계 등을 상대로 최대한 설득 노력을 하자"고 한 게 전부다. 미 상무부가 조사에 착수한 것은 지난해 4월이었던 만큼 준비할 시간은 넉넉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백인 노동자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통상 분야에서 성과를 내려 하고 있어 강도 높은 규제는 어느 정도 예상됐다.
이와 관련해 정부와 기업의 공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통상 전문가는 "기업들이 대미 통상 현안의 진행 상황을 나한테 물어본다"며 "반(反)기업 정서가 신경 쓰여 정부 쪽에 물어볼 데가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통상 대응 전략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부는 미국의 세이프가드 조치가 부당하다며 WTO에 제소한다는 방침이지만 제소 절차는 3년 넘게 걸린다.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세이프가드 기간(3년)이 끝나는 것이다.
통상 정책의 컨트롤타워인 통상교섭본부는 조직 정비도 다 안 끝난 상태다.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에 '신통상질서전략실'을 신설하고 30여 명을 충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부처 간 이견으로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승범 기자(sb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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