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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성희롱 판치는 ‘예비 고교생 단톡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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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별개로 셀프 ‘예비소집’… 선정적 발언-일진놀이 공간 변질

교사들 “말썽 생기면 바로 신고” 당부

“귀여운 ×아, 왜 대답 안 하냐?” 단톡방(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이런 메시지가 뜨자 활발하던 채팅방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서울 A고교 예비 입학생 150여 명이 참가하는 채팅방이다. 비속어 메시지를 올린 건 이 학교 입학을 앞둔 B 군(16)이었다. 이름이 언급된 C 양(16)은 곧바로 채팅방에서 퇴장했다. C 양은 “메시지가 불쾌했지만 대꾸하면 (B 군이) 해코지를 할까 봐 무서웠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입학을 앞둔 예비 고교생 사이에 이런 단톡방 개설이 유행이다. ‘예비 ○○고’라는 제목의 채팅방을 만든 뒤 서로서로 친구를 초대한다. 학교 오리엔테이션 일정이나 선생님 평판 등을 공유하고 친해지려는 목적이다. 일종의 ‘셀프 예비 소집’인 셈이다. 물론 해당 학교는 전혀 상관없다.

문제는 채팅방이 성희롱이나 ‘일진놀이’ 공간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비 A고교 단톡방에서는 일부 남학생이 여학생 프로필 사진을 놓고 “여기 여자들 노잼” “내가 귀엽다고 하는 여자 손 들어라” 등의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여학생도 참여 중이지만 얼굴과 신체를 언급하며 노골적인 성적 표현도 아무렇지 않게 오갔다. 술을 마시고 흡연하는 내용이 마치 자랑하듯 올라온다. 몸에 새긴 문신 사진을 올린 남학생도 있다. 채팅방에 초대돼 참가한 이모 양(15)은 “입학도 하기 전인데 소위 일진들이 나타난 것 같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이런 분위기 탓에 채팅방에서 퇴장하는 것도 쉽지 않다. 채팅방 초대 여부 자체가 진학할 학교에서 마치 편 가르기나 서열이 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경기 D고교에 진학할 예정인 박모 군(16)은 “100명이 넘는 학생과 굳이 친해질 필요는 없지만 혹시나 나만 외톨이가 될까 봐 두려워서 채팅방에서 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교사들도 예비 고교 단톡방의 부작용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의 한 중학교 부장교사는 “예비 입학생 채팅방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바로 신고하라”고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배상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힘의 우위에 서고 싶어 하는 청소년의 욕망과 소셜미디어가 만난 새로운 사이버 폭력의 공간이다. 일시적으로 관리가 약해지는 시기인 만큼 학교 차원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신규진 newjin@donga.com·이지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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