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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SKY 출신만 뽑으면 은행이 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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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i-로드(innovation-road)는 '혁신하지 못하면 도태한다(Innovate or Die)'라는 모토하에 혁신을 이룬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살펴보고 기업이 혁신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알아보는 코너이다.

[[i-로드]<63>SKY 출신을 채용해서 회사가 더 잘 된다면]

머니투데이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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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접 점수를 올려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출신을 합격시키고, 기타 대학 출신 지원자는 점수를 낮춰 불합격시켰다.”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26일 은행권의 채용비리 의혹 22건을 적발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민간기업의 채용의 공정성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특히 KEB하나은행이 SKY 출신을 뽑기 위해 점수를 조작했다는 정황이 제기되면서 비난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교육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출신 대학에 따른 특혜 채용은 학벌주의를 조장하고, 과도한 사교육비 원인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고 밝혔고,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청년들을 멍들게 하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학벌주의의 민낯이 드러난 조작 범죄”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은행은 “특정대학 출신을 합격시키기 위한 면접점수 조작 사실이 없으며 입점대학과 주요 거래대학 출신을 채용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설령 민간기업인 하나은행이 특정대학 출신을 특혜채용 한 게 사실이라도 그것을 ‘공정성’의 잣대를 가지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부적절한 접근법입니다. 하나은행의 채용비리는 금융법령 위반사항도 아닙니다. 민간기업이 특정대학 출신을 선호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안 됩니다. 왜냐하면 전적으로 민간기업의 자율적인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탈락시키고 누구를 뽑는 게 이익 극대화에 도움이 된다면 민간기업은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합니다. 공공기관에 적용되는 채용의 공정성 기준을 민간기업에 강요할 순 없는 노릇입니다.

# “(공무원 채용처럼) 시험 성적순으로 은행 직원을 뽑으면 어떨까요?”

민간기업인 은행에 공무원 채용 방식을 적용하면 채용비리 의혹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채용의 공정성을 100% 보장할 수 있습니다. 아예 공무원시험과 같은 은행시험을 보게 하고 전부 성적순으로 뽑으면 아무런 잡음이 나지 않겠죠.

그런데 민간기업이 신입직원을 공무원 채용하듯 성적순으로 뽑는 게 최상의 방식일까요? 공정성은 100% 달성할 순 있겠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목적에 부합될까요?

만약 시험 성적이 높을수록 기업의 이익 증대에 더 많은 기여를 한다면, 시험 성적순으로 뽑는 게 최상의 채용 방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민간기업도 시험 성적순만으로 신입직원을 채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랜 경험칙상 그런 가정이 실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만난 A은행장도 시험 성적순으로 은행원을 뽑는 방식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A은행장은 “성적순으로 신입직원을 뽑으면 오히려 SKY 출신만 뽑게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국은행입니다. 한은은 2018년 신입행원 지원서 작성항목에서 최종학력, 최종학교명, 전공, 학업성적, 학교 이메일 등 빼도록 한 블라인드 방식을 처음으로 실시했는데, 최종 선발 결과 서울대 비율은 종전과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어려운 필기시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A은행장은 시험 성적순으로 채용하는 방식에 대한 청년들의 생각을 물어본 적이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청년들이 반대했다고 말했습니다. 청년들이 바라는 ‘공정한’ 채용은 결코 공무원과 같은 시험 성적순 채용 방식이 아닌 것입니다.

이어 요즘 세상은 시험 성적이 부모의 경제적 배경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시험 성적순으로 선발하면 서울 출신을 더 뽑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지방대 출신은 탈락하고, 외국 유학생도 뽑힐 가능성은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SKY 출신만 뽑으면 은행은 망합니다.”

민간기업에서 공정한 채용 방식은 어떤 걸까요? 하나은행 채용비리 의혹에서 드러난 것처럼 SKY 출신을 뽑으면 은행이 더 잘 될까요? 만약 그렇다면, 은행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A은행장은 이 같은 채용이 은행 이익에 결코 도움이 안된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SKY 출신만 뽑으면 은행이 망한다”고 일갈했습니다.

은행은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서비스업입니다. 고객의 불만을 듣고 허리를 숙여야 하는 직업입니다. 개중에는 진상고객도 있고요. 그런데 SKY 출신들이 이 같은 서비스를 더 잘할까요? 만약 본부에 앉아 기획하는 사람만 있고 지점에 나가려는 사람이 없다면, 은행은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과거 장기신용은행입니다. 당시 업계에서 장기신용은행은 거의 SKY 출신들만로 구성된 은행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8년 IMF 외환위기에 닥치자 은행은 흔들렸고, 결국 당시 국민은행에 흡수합병되는 처지가 됐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장기신용은행이 SKY 출신들만 뽑아서 망하고 말았다고 말했습니다.

A은행장은 다양한 인재가 은행 이익 극대화에 더 많은 기여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SKY 출신만 뽑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습니다. A은행장은 SKY 출신을 특혜채용하는 게 ‘공정성’을 위반했기 때문에 잘못됐다고 비판한 게 아니고, 은행의 이익 극대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잘못됐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최근 은행권 채용비리 의혹이 터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민간기업이 특정대학 출신을 특혜채용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합니다. 정치인은 범죄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러나 기업인과 경제인은 특혜채용이 기업의 이익 극대화 목적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분석하고 잘잘못을 따져야 하는 게 맞습니다. 만약 SKY 출신을 특혜채용 하는 게 기업 이익 증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마땅히 철회하는 게 옳습니다. 반대로 SKY 출신을 채용해서 회사가 더 잘된다면, 또 마땅히 허용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A은행장과 같이 SKY 출신만 뽑으면 기업 이익 증대에 기여하지 못하고 회사가 망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기업인과 경제인이 더 많습니다.

강상규 소장 mtsqkang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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