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6 (토)

[양승태 사법 농단]속속 드러나는 ‘유착의 퍼즐’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 “사안 엄중함 잘 알아…신중하게 입장 정하겠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 대선개입’ 사건 재판 과정에서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1심부터 지속적으로 결탁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추가조사위원회가 공개한 법원행정처 문건과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서 이를 뒷받침할 내용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앞서 추가조사위는 2015년 2월 대법원과 청와대가 원 전 원장의 항소심 판결 선고 전후 의견을 나누고 해당 재판부 동향을 파악하려 한 정황을 공개했다.

23일 경향신문이 확보한 김 전 수석의 업무일지 2014년 9월11일자를 보면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79)을 의미하는 ‘長(장)’ 아래에 ‘元(원)-2.6y, 4유, 停(정)3’ ‘이종명-민병주-1y, 2유, 정1년’이라고 쓰여 있는 부분이 있다. 김 전 실장 주재로 오전에 열린 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실수비)에서 언급된 내용을 김 전 수석이 받아 적은 것이다. 이 내용은 같은 날 오후 2시에 있었던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 부장판사)의 원 전 원장 1심 선고 결과와 일치한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에게 징역 2년6월·집행유예 4년·자격정지 3년, 이종명 전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에게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김 전 실장이 적어도 반나절 전에 원 전 원장의 1심 선고 결과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판사 출신 박판규 변호사는 “일련의 과정들에 대한 퍼즐 조각이 하나둘씩 맞춰지는 느낌”이라며 “청와대에서 원 전 원장 사건 외에도 관심을 갖는 판결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합리적 추론”이라고 말했다.

김 전 수석 업무일지 2014년 9월6일자에는 ‘법원 지나치게 강대, 공룡화, 견제수단 생길 때마다 다 찾아서 길을 들이도록(상고법원 or)’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상고법원을 대가로 법원을 길들이겠다는 취지이다. 법원행정처는 이 같은 상황을 인식하고 오히려 청와대를 역이용했다. 지난 22일 추가조사위가 공개한 문건을 보면 법원행정처는 ‘발상을 전환하면 이제 대법원이 이니셔티브를 쥘 수도 있음’이라고 판단했다. 청와대 의도대로 재판을 해주고 상고법원을 성공시키는 기회로 삼자는 의미다. ‘1심과 달리 결과 예측이 어려우며’라고 기재한 대목에 대해서는 “1심 판결을 법원행정처가 미리 입수했다는 방증”이라고 법원 안팎에선 지적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김 전 수석 업무일지 2014년 9월22일자에는 ‘비위 법관의 직무배제 방안 강구 필요(김동진 부장)’라고 적혀 있다. 김동진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 원 전 원장 1심 판결이 ‘지록위마(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라는 비판글을 올렸다. 김 전 실장이 김 부장판사를 언급한 지 나흘 만인 2014년 9월26일 수원지법은 김 부장판사가 법관의 품위를 손상했다며 대법원에 징계를 청구했고, 그해 12월3일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2개월 정직 처분을 결정했다. 김 부장판사의 징계 결정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날 출근길에 “일이 엄중하다는 것은 제가 잘 알고 있다”며 “자료들도 잘 살펴보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은 다음 신중하게 입장을 정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