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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김호기 칼럼]청년세대의 내면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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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분석에서 세대는 유용한 동시에 애매한 변수다. 유용성은 세대 변수의 설명력에서 주어진다. 세대 투표와 세대 갈등, 청년 문화와 실버 경제 등이 보여주듯 세대는 분명 사회변화를 이끄는 동인이다. 하지만 같은 세대라 하더라도 그 안에는 이념 또는 계층에 따른 차이가 존재한다. 세대 변수의 애매성은 여기서 비롯된다.

경향신문

눈치 빠른 독자들은 내가 왜 세대 문제를 꺼냈는지 간파했을 듯하다. 새해 들어 단연 주목받는 이슈는 청년세대다. 가상통화, 평창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등 정부 정책에 대한 20대의 비판 여론이 높다. 가상통화 대책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동계올림픽에 대한 청년세대의 반응에 정부는 물론 기성세대는 상당히 당황한 것으로 보인다.

기성세대는 청년세대를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50대인 나 역시 이들의 내면세계를 잘 알고 있진 못하다. 다만 20대를 가르치는 게 직업이기에 그들을 가까이 관찰할 수 있었다. 이들의 집합적 세계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비교적 접근과 내재적 접근이 고려돼야 한다.

청년세대를 지칭하는 대표적 개념으로는 미국 ‘밀레니얼 세대’와 일본 ‘사토리 세대’가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에 출생한 세대다. 이 세대의 특징은 정보통신기술에 익숙하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소통한다는 데 있다. 이들은 인터넷과 함께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사토리 세대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후반 사이에 태어난 세대다. 이 세대의 특징은 안정된 직장은 물론 개인적 출세에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깨달음’을 뜻하는 사토리란 말이 보여주듯 이들은 물질적 욕망에 달관한 세대다.

우리나라 20대는 사토리 세대보다 밀레니얼 세대에 가깝다. 사토리 세대처럼 물질적 욕망에 달관하기에는 우리 청년세대의 삶이 너무 절박하다. 밀레니얼 세대처럼 디지털 문화에 친화적이고 자기애와 개인주의가 강하다.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중시하고 자기 방식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20대는 1970년대에 태어난 직전의 ‘신세대’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최초의 ‘개인주의 세대’다.

주목할 것은 밀레니얼 세대와 사뭇 다른 집합적 경험의 차이다. 1990년생을 예로 들어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외환위기를,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금융위기를 겪었다. 10대의 치열한 입시 경쟁과 20대의 무한한 취업 경쟁은 이들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회적 배경이었다. 몇 해 전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헬조선’ ‘수저계급’ ‘7포(연애·결혼·출산·대인관계·집·꿈·희망의 포기) 세대’는 바로 이런 배경 아래 등장한 조어들이었다.

삶의 사회적 조건이 이렇듯 어려운 만큼 우리나라 청년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그 치열한 경쟁에서의 공정한 룰이다. 입시에서 취업까지 무한 경쟁이 일상화된 ‘능력주의(meritocracy)’ 사회에서 공정한 규칙의 존중은 훼손돼선 안 될 합리성과 정당성의 마지막 거점이다. ‘정유라 사건’에 대해 가장 분노한 이들도 바로 이 청년세대다. 그리고 이 세대의 적지 않은 이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정부 정책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해소라는 대의에는 공감하지만 능력에 따른 차별이라는 암묵적 룰을 훼손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나라 청년세대를 관통하는 두 집합적 심성이 개인주의와 능력주의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대 문명의 발전 경향을 지켜볼 때 개인주의의 확산은 비가역적 현상이다. 욕망과 이성을 포함하여 개인의 행복에 앞서는 가치를 더 이상 일방적으로 강제하기 어렵고 또 강제해서도 안 된다.

문제는 능력주의에 있다. 미국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일찍이 능력주의의 폐해를 지적한 바 있다. 입시 경쟁, 취업 경쟁, 퇴출의 공포에 따른 생존 경쟁은 능력주의의 살벌한 전쟁터를 이룬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은 능력주의의 가장 어두운 그늘이다. 그러나 동시에 능력주의는 특권으로 무장된 ‘귀족주의(aristocracy)’ 사회에 맞설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거점이다. 수저계급론에서 볼 수 있듯 강화되는 세습자본주의 경향을 지켜볼 때 능력주의는 그 폐해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심리적 저지선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

앞서 말했듯 세대 변수는 애매한 구석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까닭은 20대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이해에 있다. 기성세대의 충고든 정부 정책의 결정이든 가치판단이 사실판단을 선행할 순 없다. 청년세대의 내면세계에 좀 더 다가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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