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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공감]새해 더 분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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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역사학자 미슐레가 ‘나는 프랑스가 아프다’라고 했듯이, 지난 9년간 한국이 정말 많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나라를 지옥 앞으로 끌고 갔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옥에 밀어넣으려고 했었다. 나라가 개인 회사에서 개인 구멍가게로 전락하는 찰나에 국민들이 촛불로 지옥문 앞에서 국가를 구한 셈이다. 최근 두 전직 대통령들과 관련자들의 뉴스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형량을 줄이기 위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곧 기자회견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인들의 빠른 망각과 가벼운 용서풍조를 기대하면서.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렇게 쉽게 분노를 풀어내서는 안된다. 국민들의 성난 분노가 없었다면, 무라카미 류가 자기 나라 일본에 대해 ‘다 있는데, 희망만 없는 나라’라고 말했듯이, 우리도 희망이라는 두 글자가 없는 사회에 살아갈 뻔했다.

경향신문

사람들은 분노가 나쁜 감정이라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때로 분노는 매우 적응적이고 필수적이다. 과잉표출된 분노는 폭력으로 가고, 과잉억제된 분노는 자해가 되지만 적절하고 필요한 분노는 모두에게 새로운 정화와 희망을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마땅히 분노해야 할 일들에 분노해야 하고, 아직 우리가 분노하지 못해왔던 것들에 대한 목록을 뒤져서 지금이라도 새롭게 분노 목록을 작성해야 한다. 정당하게 분노해야 할 일들에 분노하지 않고, 김수영 시인의 말처럼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사소한 분노의 사소함은 비겁함의 포장지이고, 책임전가와 호도일 뿐이다. 혼자 못 내면 한데 모여서 내고, 그것도 힘들면 순번을 정해서 분노하여, 정당한 분노의 촛불이 꺼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간 정부를 위하여, 기업을 위하여, 학교의 명예를 위하여,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무작정 참아왔던 일들이 너무 많았다. 많은 나라에서 우리보다 어려워도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해왔던 일들이 있다. 이것들을 꺼내어 분노의 리스트에 올려보고 함께 분노하자!

동네에 발암물질 공장이 들어와서 부실한 해독 처리장치를 하며 가동이 되어도 공장 살리자는 시장 때문에 암 걸려가며 경제 살리는 일은 그만하고 분노해야 한다. 아이들이 밤새워 게임하고 유해 동영상 보면서 모두 입과 몸을 버렸는데도 게임산업, 휴대폰 사업 살리자고, 기업 욕 안 하고 내 자식 중독자 만드는 일도 그만하고 분노해야 한다. 놀 시간이 없는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하면서, 입시제도를 바꾸어내지 못하는 우리 스스로에게 분노해야 하는데, 정작 아이들만 혼내는 일은 어른이 할 일이 아니다. 고독사를 예방하지 못하면서 고시원 주인을 탓하는 것도 사회가 할 일이 아니다. 학대당한 아이가 죽었는데, 부모를 잘못 만난 불행을 논하는 것은 무책임한 공무원이다. 장애시설, 요양원에 사람들을 격리하고 평생 살아가게 하면서 거주의 자유와 지역사회 돌봄을 이야기하는 것도 복지사회로 가는 길이 아니다.

케네디가 단테의 신곡을 빌려 말했듯이 지옥 최고의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의 몫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90세 프랑스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이 작금의 프랑스를 보면서 외치지 않았던가? 분노하라고! 젊은이여 분노하라!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물러서지 않고 본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잔인한 거짓말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마땅히 해야 할 분노를 그는 했다. 그리고 그것을 국민에게 천명한 것은 용기 그 자체였다. 나의 새 해 다시 정리한 분노리스트는 이렇다.

첫째, 차별에 분노한다.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 특히 빈곤층인 1종 기초생활수급권자에 대한 차별을 중지하라. 둘째, 관료적 대책에 분노한다. 자살에 대한 시민으로부터의 대책을 세우고,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실질적 예산을 펼치라. 셋째, 또 다른 차별에 분노한다. 온 국민이 심리적 상처와 고통으로부터 치유되기 위하여 상담과 치료의 장애물이 되는 온갖 보험사들과 취업 및 계약에서의 불리한 조건들을 걷어치우라. 넷째, 격리와 감금에 분노한다. 장애인들이 평생 시설에 갇혀 생이 마감되지 않게 폐쇄형 장애시설을 없애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함께 정의의 분노리스트를 작성해보자.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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