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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김진경의 교육으로 세상읽기]교육정책을 다룰 때 염두에 두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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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학입시 정책은 속된 말로 본전을 찾기 어려울 만큼 늘 논란이 많은 영역이다. 이것은 대입정책이 상대적으로 사회적 강자들의 이해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영역이란 뜻이기도 하다. 사회적 강자는 그만큼 발언력도 세니 그 다툼에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 시끄러운 영역에서 최근 대입의 공정성을 살리기 위해 수능 성적 중심의 정시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사실 학교교육이라는 마당은 대학입시까지 오기 전에 이미 기울 대로 기울어져 있어 반이 훨씬 넘는 고등학생들은 대학입시에 아무 관심 없이 엎드려 잔다. 이 아이들의 상당수는 가정환경 때문에 영·유아기에 방치되어 문화적 결손을 입고, 입시 위주 학교 체제에서 이 문화적 결손이 회복될 길이 없어 일찍부터 사실상 학업을 포기한 아이들이다. 교육의 공정성은 이미 뇌의 90% 이상이 결정된다는 영·유아기부터 근원적으로 깨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미 기울 대로 기운 대입이라는 마당에서 벌어지는 공정성 시비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과연 그들의 주장대로 공정하기는 한 걸까?

공정성에는 여러 차원이 있다. 그중 가장 높은 차원은 국가 차원의 공정성일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대학입시의 공정성은 될 수 있으면 대학사회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도록 다양하게 구성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일 게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국가가 잠재력을 갖는 인재의 유실을 막고 인재 육성의 사회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좋은 가정환경에서 공부하여 80점을 맞은 아이와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70점을 맞은 아이를 동등하게 평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지 않으면 대학사회가 특정 계층의 아이들로만 구성되어 매우 편향적인 사회적 지도력을 배출함으로써 장기적으로 국가의 공정성을 크게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학에서 동종교배의 반복은 멸종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이것은 국가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국가적 차원의 공정성에서 볼 때 수능은 상대적으로 공정하지 못하다. 대입이 수능 중심으로 갈수록 특목고나 특정 지역의 고등학교가 상위권 대학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학생종합생활기록부 중심의 수시 비중이 늘어날수록 상위권 대학에 다양한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들어온다는 것은 이미 사실로 드러나 있는 바이다.

그런데 왜 수능 중심의 정시 비중이 높아지면 특목고나 특정 지역의 고등학교가 상위권 대학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시험의 내용이나 형식에 불공정한 요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수능은 학교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가 되기 때문에 교과서를 따라가는 수업과는 다른 별도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5지선다의 제한된 방법으로 누군가를 떨어트려야 하는 시험은 문제 자체에 많은 트릭을 감추고 있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100미터 달리기인데 수능은 100미터 장애물 경주인 셈이다. 당연히 별도로 많은 사교육비를 들여 장애물 넘는 요령을 숙달한 학생이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충실하게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따라 100미터 달리기만 연습하고 별도의 준비를 하지 않은 학생이 수능이라는 100미터 장애물 경주에서 이길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공정성의 마지막 차원은 그 시험이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필요한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가 여부이다? 만약에 미래에 필요한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 시험은 모든 아이들에게 불공정한 것일 게다. 수능은 어떨까? 그 대답은 최근 일본이 선다형의 시험으로는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고도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고 보아 대학 학생 선발을 위한 국가고사를 서술형으로 바꾸는 교육개혁에 착수했다는 사실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수능을 비판적으로 본다고 해서 내가 현재의 학생종합생활기록부 전형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보는 걸로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현재의 학생종합생활기록부 전형은 대학사회를 좀 더 다양한 학생들로 구성토록 하는 장점도 있지만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학생에게 유리하도록 기록이 부풀려 있을 소지도 없지 않고, 학교 간의 편차를 볼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없어 변별력이 없다는 지적이 나올 만도 하다. 수능이든 학생종합생활기록부 전형이든 비슷하게 상한 사과인 셈이다. 비슷하게 상한 사과를 놓고 이것이 옳으니 저것이 옳으니 하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논란만 부풀릴 뿐 해결책이 나올 수가 없다. 현재의 대입제도는 말하자면 진퇴양난에 빠져 있는 셈이다.

진퇴양난에 빠졌을 땐 발상의 전환을 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예컨대 고2 말에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요구하는 기본적인 표현력, 응용능력을 평가하는 국가고사를 보고, 고3 말에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 대한 논술형 국가고사를 보아 그 결과를 학생종합생활기록부에 기록하는 것이다. 이렇게 밖에 있는 국가고사를 고등학교 교육과정 안으로 끌어들이면 학생종합생활기록부에 대한 변별력이나 신뢰성 시비가 사라져 공정성 문제가 해결되고, 대학입시를 수시와 정시로 나누는 번거로움도 사라져 단순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고2 말에 치르는 국가고사에서 최소 수준에 미달한 학생에게 1년간의 보충수업을 실시하여 고3 말에 다시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공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무성을 높여 교육 불평등을 다소나마 완화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대학별 고사의 폐해를 피하기 위해 국가가 그것을 대행하는 국가고사를 고등학교 교육과정 밖에서 실시하는 것은 하나의 편법이다. 이러한 편법과 그것이 야기하는 사교육으로 본체인 학교교육을 흔드는 일은 이제 그만 둘 때도 되었다.

<김진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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