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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김형주의 세계경제 돋보기]트럼프 행정부 1년이 남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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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국에서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다. 취임 전부터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흐름을 되돌리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개시, 세이프가드 발동 등으로 국제무대와 잦은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그뿐만 아니라, 의회와 협력해 법을 만들려는 노력보다 행정명령을 통해 우회하는 방식을 선호해 워싱턴 정가와도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초기의 우려에 비해서는 혼란이 크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각종 이민 관련 제재, 환율조작국 지정 시비, 수입 장벽 상향 등 백악관이 밀어붙였던 여러 조치들이 ‘견제와 균형’을 중시하는 미국 시스템에 의해 적절히 관리된 덕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 반대를 피하기 위해 지난 1년 새 55개에 달하는 행정명령을 내렸지만 이마저도 행정부 실무 부처와 지자체, 법원 등이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무산될 때가 많아 1개월 내 처리된 경우는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정치·외교적 혼선과 대조적으로 지난 1년간 미국경제는 상당히 양호한 모습을 보여줬다. 2017년 한해 동안 5000포인트 이상 상승하며 줄곧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던 다우산업지수는 올해 결국 2만6000포인트까지 넘어섰으며, 지난 3분기 3.2%를 기록한 분기별 GDP 증가율 역시 201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경기 개선에 힘입어 실업률도 2000년 이후 최저치인 4.1%까지 낮아졌다.

물론 미국경제의 실적 개선이 트럼프 행정부의 성과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번 정부의 몫 외에 전임 정부가 기여한 부분과 세계경제 회복에 힘입은 성과가 함께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주가만 하더라도 2016년 초부터 오르기 시작해 1년 새 5000포인트 가까이 상승했고, 동아시아 기업들의 투자가 늘면서 자본재 수출과 지재권 수입이 증가했다. 낮은 실업률에도 임금 상승률이 2.5%에 그친 것은 성과가 아니라 친기업 노동정책의 부작용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논란과 상관없이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트럼프 정부의 성과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새다. 올해 미국경제 전망도 밝은 편이다. 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이 미국 내 생산과 투자를 유리하게 만드는 방향, 즉 국내 투자에는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수입 장벽은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고, 세계경기 회복에 따른 해외 수요 증가와 기업들의 투자 확대 역시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다만, 기업들의 실적 회복이 임금 상승과 내수 확대로 이어지는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선도 기업들의 성장 과실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고 미국 내 경제주체들에게 흘러가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글로벌가치사슬(GVC) 참여를 줄이는 등 해외 부문과의 연결 고리를 제한해야 하지만, 이런 조치는 장기적으로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로섬 게임보다 윈윈 게임을 선호하는 글로벌 기업들 입장에서 당분간은 미국 내수시장 규모가 워낙 커서 어쩔 수 없겠지만 유럽, 중국 등의 시장 통합과 생산 분업이 진전되면 얼마든지 결정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재정 건전성 악화 가능성도 미국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법인세 인하, 멕시코 장벽 건설 등 최근의 정책 결정 방향을 감안할 때 세수 감소와 세출 확대가 불가피해서다. 특히 올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합리적 판단보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앞세운 정책 결정이 늘어날 것이라는 점 역시 이런 걱정을 뒷받침한다. 정책적으로 여러 면에서 닮은꼴로 평가받는 레이건 대통령 임기 동안 국가 채무가 9000억달러에서 2조9000억달러 규모로 급증했고, 이후 미국경제가 장기 침체기에 진입했다는 역사적 경험 또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이와 같은 미국경제의 구조적 변화는 한국경제와 기업들에도 그다지 달갑지 않다. 미국시장 진출이 어려워지고 세계경제 위축과 불안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개별 국가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다.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두 나라의 경제적, 외교적 격차가 큰 상황에서 대등한 협상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서다. 따라서, 다자협상을 최소화하려는 미국의 대외정책 방향을 감안할 때 쉽지는 않겠지만, 미국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한·미 간 양자 채널보다 UN이나 G20 등을 통한 다자 간 협의에 우선을 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런 설득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나라들마저 미국과 마찬가지로 반세계화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돌아설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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