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평론·에세이 모은 '재일의 틈새에서' 발간
2010년 제주 방문 당시의 재일조선인 시인 김시종 |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스무 살 김시종이 물통과 콩자반, 옷가지, 오십 전 지폐를 지닌 채 제주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밀항선에 탄 것이 1949년이었다.
남로당에 몸담은 경력 때문에 '빨갱이'로 낙인 찍힌 김시종은 부모가 있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곧 들려온 박헌영 처형 등의 소식은 북한을 향한 그의 동경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일본에 남아 사회주의 운동을 벌였지만, 갈수록 김일성 우상화에 매몰되는 조총련과도 불화했다.
남·북한, 일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살아온 재일조선인 시인 겸 사회운동가 김시종의 산문집 '재일의 틈새에서'(돌베개 펴냄)가 국내에서 출간됐다.
'재일의 틈새에서'는 그가 조총련과 완전히 결별한 1971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쓴 평론과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제40회 마이니치출판문화상 인문사회 부문 수상작이다. 1986년 일본에서 먼저 발간된 책을 윤여일 제주대 학술연구교수가 번역했다.
당시 공립학교 조선어교사였던 저자는 재일조선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따지고 보면 재일의 삶에서 전망을 그릴 수 없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본국의 분단 대립은 염원을 덧없게 만들고 있다. (중략) 일본에 거주하면서 분단이라는 민족적 시련에 시달리는 조국의 역사적 운명에 닿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나는 왜 재일조선인인가. 이 책은 이 같은 넋두리로 짜여 있다."(2003년 '재일의 틈새에서' 헤이본샤 라이브러리판)
책은 '코스모폴리탄적 허무주의자'라는 비판, 경계인으로서 느끼는 외로움 등을 감수하면서도 "재일을 사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김시종의 분투를 보여준다.
김시종은 젊은 재일 세대들을 향해 "재일조선인에게 '조선'이란 '재일'이다. 본국을 흉내 내서 '조선'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이를 수 없는 조선을 살아 '조선'이어야 할 자기를 형성하자"고 격려했다.
당시 광복 후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민족을 바라보는 안타까움도 책에 담겨 있다. "일본은 풍요에 풍요를 쌓아 경제대국이 됐고 (중략) 조선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분단의 고초를 겪은 끝에 철천지원수인 이민족처럼 적의를 드러내며 끝없는 불신, 반목의 역사적·시대적 고난에 시달리고 있다."
저자는 "통일을 향한 희구마저 구속하지는 말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하면서 남북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시인인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계속 고민한다.
1929년생인 김시종이 황국신민을 갈망했던 유년 시절을 고백한 글도 눈에 띈다. 일색 천지인 세상에서 조선어와 조선옷을 고수했던 아버지는 내내 마음의 큰 짐이었다. 김시종은 16살에 일제 패망 소식을 들은 다음에는 "일본이 졌다는 게 믿기지 않아 일주일 넘게 밥을 못 넘길 만큼 풀이 죽어 있었다". 일본이 조선문화를 말살할 때 가장 주효했던 수단이 교육이었음을 소년 김시종이 보여준다.
해설을 쓴 일본 시인 호소미 가즈유키의 설명처럼, 김시종의 글을 읽는 것 자체가 "20세기 동아시아의 결정적 '증언'"을 듣는 일이다.
404쪽. 2만 원.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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