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범준씨 작년 연말 유엔 행사서 '장애인 인권' 발표
지난해 12월 유엔 세계장애인의 날 행사에 참석한 배범준(사진 오른쪽)씨 [배범준씨 어머니 제공=연합뉴스] |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3살 때인 2000년 외부 충격으로 일부 기억상실증과 무언증을 앓은 배범준(21)씨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어눌한 말투 탓에 따돌림을 당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친구들에게 폭행과 '왕따'를 당하며 증세는 더 심해졌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장애인으로 살아갈 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에는 온통 죄책감뿐이었다.
배씨의 어머니 김태영(52)씨는 "초등학교 때 아들이 집에 와서는 '학교에서 친구들이 자꾸 때린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아들 말을 믿지 않았다"며 "때렸다는 친구들이 모두 모범생으로 불리는 아이들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때 왜 아들 말을 믿어주지 못했는지 지금도 자책한다"며 "일반 학교에서 적응을 못 한 아들을 곧바로 특수학교로 보냈더라면 장애가 더 심해지진 않았을 텐데…"라고 후회했다.
장애인에게 개방적인 미국으로 이민을 갈까도 생각한 김씨는 남편의 만류로 마음을 다잡았다. 한국에서 장애인 아들을 제대로 키워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배씨는 중학교부터는 고등학교까지는 장애인 학생들이 한 데 모여 교육을 받는 특수학교에 다녔다.
고등학교 때 인지능력검사에서 지적능력이 3살 수준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첼리스트 배범준 씨 [배범준 어머니 제공=연합뉴스] |
배씨는 현재 백석예술대학교 클래식 학과(첼로 전공) 졸업을 앞두고 있다.
지적장애 첼리스트로 활동 중인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첼로를 손에 쥐었다. 교육센터 등지에서 역사 강의를 한 어머니를 기다리며 우연히 들은 첼로 소리는 그의 인생을 바꿨다.
교육센터에서 1주일에 한 번 수업을 받으며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 배씨는 실력이 늘자 장애인 학생콩쿠르 대회 입상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전국학생 예능대회에서 최고상을 받는 등 각종 대회를 휩쓸었다.
2014년에는 미국 뉴욕 유엔본부서 열린 '세계 장애인의 날' 행사에서 다른 장애인들과 공연단을 꾸려 비틀스의 '헤이 주드'와 바흐의 '프렐류드' 등을 연주했다.
배씨는 자신의 재능을 뽐내는 데서 그치고 싶지 않았다. 꼭 유엔 무대에서 세계인들에게 장애인의 인권을 알리겠다는 꿈을 꿨다.
'저는 한국 서울에 사는 배범준입니다. 3살 지능의 지적장애인입니다.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 뉴욕 유엔에서 지적장애인에 대한 인권을 발표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삐뚤빼뚤한 한글과 영어로 동시에 쓴 편지를 지난해 10∼11월 유엔본부와 한국 외교부에 보냈고 마침내 초청장이 왔다.
미국행 항공료와 체류비는 소셜 기부플랫폼인 '세어앤케어'의 캠페인과 하나금융그룹의 후원으로 마련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세계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에서 4분이라는 시간이 배씨에게 주어졌다.
'지적장애인은 아기가 아닙니다. 장난감이 아닙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조금 다릅니다. 표현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표현합니다. 언어가 느립니다. 이해도 느립니다. 행동도 느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기다려 준다면 우리는 많은 가능성을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유엔 세계장애인의 날 행사에서 발표하는 배범준씨 [배범준씨 어머니 제공=연합뉴스] |
한 달간 연습한 어눌한 영어로 발표를 마치자 행사장에 참석한 각국 관계자들의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유엔 무대에서 장애인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겠다는 꿈을 이룬 배씨는 18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나는 사람이야. 말해야 해. 예쁜 눈으로 봐주세요'라고 더듬거리며 소감을 말했다.
배씨의 어머니는 김씨는 "유엔 무대에서 연설을 해보겠다는 아들의 꿈이 이뤄지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가능할 거라고 비관했었다"며 "지적장애인의 이야기를 유엔의 많은 관계자가 귀담아들어 주는 모습을 보면서 모든 장애인이 각자의 꿈을 꾸고 실현하는 세상을 다시 마음에 품었다"고 말했다.
s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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