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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그날’을 모르는 자 여성을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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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두 남자 기자가 본 여성 생리 다룬 ‘피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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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살 때면 편의점을 한 번 둘러본다. 남자 손님이 없을 때, 재빨리 카운터로 가 물건을 내민다.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검정 봉지에 후다닥 담아준다. 말할 수 없는 그것은 ‘생리대’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생리는 공공장소에서 쉽게 내뱉기 어려운 주제다. 한 달에 한 번, 30여년 400번 안팎을 경험하는 생리를 여성들은 왜 숨겨야 할까. 다큐멘터리영화 <피의 연대기>는 이런 의문에서 시작한다.

한국 최초 생리 탐구 다큐를 표방한 <피의 연대기>가 18일 개봉된다. 영화는 생리대와 생리컵의 역사, 사용 방법 등을 소개한다. 여성들이 생리 경험을 털어놓기도 한다. 경향신문 조형국·허진무 두 남자 기자가 영화를 미리 봤다. 두 사람의 감상 소감과 김보람 감독(31)의 제작기를 엮어 함께 구성했다. 김 감독과는 지난 2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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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와 ‘생리’ 얘기를 하다

<피의 연대기>는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미리 소개됐다. 20~30대 여성 관객이 다수였지만, 남성 관객들의 주목도 받았다. 영화를 본 기자들은 “평소 여성 문제에 관심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무지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조형국(이하 조)=아내와 함께 봤어요. 영화를 보면서 아내가 ‘나도 그랬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다’고 공감하며 말했는데, 전 처음 듣는 얘기들이었어요. 아내와 이런 얘기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냥 아내가 ‘나 생리 시작했어’라고 말하면, 저는 ‘신경 안 쓰이게 말조심을 좀 해야겠구나’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말았던 거죠.

허진무(이하 허)=생리혈이 뭉쳐서 한 번에 쑥 빠지는 느낌을 다큐에서 ‘밑이 빠지는 것 같다’고 표현하잖아요. 저는 그 두 느낌을 다 모르니까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다만 제가 예전에 팔을 다쳐서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경험이 있어요. 생리를 하면 자신의 몸을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느낌이겠구나. 정말 힘들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영화가 밝은 점도 마음에 들었어요. 벌거벗은 여성이 들판을 달리는 걸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는 등 관객들이 편하게 볼 수 있게 신경을 많이 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김보람(이하 김)=남성이든 여성이든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다큐를 만들고 싶었어요. 애니메이션 효과에 신경을 썼죠. 제일 돈이 많이 들었어요. ‘재미도 없으면 의미도 없다’는 말에 굉장히 공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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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탐폰’의 자세한 생김새는 영화에서 처음 봤어요. 가족 중에 어머니만 여자예요. 어머니가 생리에 대해 말하는 걸 들어본 적도 없고, 어머니 생리대도 본 기억이 없어요.

조=결혼을 하고도 아내의 생리대를 본 적이 없어요. 아내가 딱히 숨겼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굳이 내놓지 않았던 거죠. 결혼 전에는 화장실에 편하게 갖다놓았다고 하던데, 결혼 후에는 화장대 서랍에 두었다가 화장실에 갈 때 가져간다고 하더라고요. 감독이 직접 생리컵을 사용하는 장면도 생각나는데요. 이 영화 아니었으면 평생 몰랐을 내용 같아요.

김=피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는 계속 고민했던 부분이었어요. 내밀한 얘기이기 때문에 제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고프로(머리에 착용하는 촬영장비)를 끼고 촬영했어요. 제 생리혈이 담긴 컵을 세면대에 흘려보내는 장면을 찍은 거죠. 다양한 생리용품을 소개한 건 대안 제품의 우수성을 알린다는 명목보다는 선택권의 확장 때문이었어요.

조=생리컵의 피를 세면대에 버리는 장면도 좋았어요. 막연히 더럽다는 이미지가 있을 수 있잖아요. 이걸 오물처럼 변기에 흘려버리는 게 아니라 세면대에 버리니까 불결하다는 이미지가 상쇄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 생리 영화에 왜 악플이 달릴까?

영화는 인터뷰이를 구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여성들이 생리 경험을 공개 발언하기란 껄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선 굳이 이걸 영화로 만들 이유가 있느냐고 핀잔하기도 했다. 감독은 영화를 만든 후 일부 악플에 시달렸다.

김=처음에 많은 분들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는데, 알겠다고 한 분들은 기혼 여성밖에 없었어요. OK 해주신 분들도 ‘나는 결혼했으니까 가능하지’라고 말씀하셨는데, 한국 사회에서 미혼 여성이 터놓고 얘기하는 게 참 어렵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했어요. 영화에서 유일하게 모자이크로 등장하신 분들이 초등학교 선생님 세 분인데요. 학부모들이 영화를 보고 항의 전화를 할 수 있다는 걸 걱정하셨기 때문이에요. 영화 소개 기사엔 일부 ‘생리충’이라는 댓글이나 제 외모에 대한 악플도 있었어요. 좋게 보신 분들이 더 많아요.

조=마지막에 감독이 대안 생리 용품을 사용한 뒤, 자신의 몸을 더 사랑하게 됐다고 하는 부분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제 아내도 ‘사회가 여성에게 주는 압력이 얼마나 큰데 그걸 혼자 인식을 바꾼다고 이겨낼 수 있을까’라고 말하더라고요.

허=자기 몸을 이해하는 것이 몸에 대한 애정의 시작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봐요. 영화에서 어떤 분이 일회용 생리대를 구겨서 버리는 거랑, 면 생리대를 빨아 쓰는 경험은 굉장히 다르다고 말한 부분도 있고요. 다만 영화 뒷부분에 특정 정당이 많이 노출되는 부분은 작품 맥락에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김=저는 운동권도, 활동가도 아니에요. 스토리텔러로서 여태까지 우리가 말하지 않았던 소재를 얘기하고 싶었죠. 그게 생리였어요. 연대와 공동 행동에 대한 의미를 담으려다 보니 여러 얘기를 한 것 같아요. 중학생들과 대화해보니 남자아이들도 ‘생리컵’이라든가 하는 걸 다 알고 있더라고요. 이런 정보를 인터넷에서 접하다 보니, 처녀막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믿는 아이들도 있어요. 청소년들 사이에 최신 정보와 확인되지 않은 오류들이 극단적으로 결합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조건 숨기기보다는 좀 더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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