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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충무로에서] 장관님, 민생해법은 `꽃길`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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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4일 찾아간 서울 성북구 동아에코빌 아파트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상생 벤치마킹 투어'를 다녀가 적잖게 유명세를 탄 곳이다. 다른 아파트들이 경비 절감을 이유로 경비원을 해고하고 홀대할 때 동아아파트 주민들은 절전 운동으로 비용을 아껴 경비원 고용 안정과 임금 인상을 보장했다.

김 장관이 이곳을 찾은 건 최근 강남의 아파트 경비원 해고로 최저임금 논란이 커진 가운데 모범이 되는 사례를 찾아 격려하고 홍보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날 김 장관 얘기를 현장에서 한참 듣다 보니 '번지수'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생겼다.

김 장관은 인사말부터 피날레까지 시종일관 주민들 앞에서 "서민 주머니에 돈이 돌고 경기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고, 최저임금은 내 남편·내 아들의 소득이기도 한 만큼 적극적인 여러분 지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런 설득이 필요한 곳은 이 아파트처럼 자발적 모범 사례가 아니라 아파트 경비원 해고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강남 압구정 아파트들이다.

'똑똑한 답'은 테이블에 마주 앉은 경비원과 주민들로부터 나왔다. 한 60대 경비원은 "우리는 임금 올리는 것보다 오래 근무하는 걸 더 원한다. 그런 방향을 정책에 반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압구정 모 아파트가 경비원 구조조정을 하려다 악덕 주민이 되고 있다. 해당 아파트는 100가구당 경비원 숫자가 3.2명이고 여긴 1.2명이다. 관리비를 아끼자는 게 나쁜 게 아니고 생각과 방법이 다를 뿐인데, 객관적 시각으로 봐달라"는 당부도 나왔다. 각각 다른 상황의 정책 수요자들에게 '임금 인상'과 '해고' 잣대로 정부가 국민 간 선악 대결을 시키지 말고 '일자리 나눔' 등 탄력적 해법을 찾아달라는 부탁이었다.

간담회 후 쏟아지는 기자들의 '강남 집값' 질문에 김 장관은 침묵했다. 이날 간담회 취지와 상관없으니 '노코멘트'라는 식이었다. 최저임금이 아무리 올라도 매년 수억 원씩 집값이 뛴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 '소득 주도 성장' 대신 '집값 주도 성장'만 목격되는 참담한 상황에서 이보다 중요한 질문은 없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주민들에게 김 장관을 '험한 일 하는 여장부'라고 소개했다. 사방팔방 터지는 사고 뒤처리와 손댈수록 꼬이기만 하는 골치 아픈 집값을 도맡은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그래서 국토부 장관은 '꽃길'보다 '가시밭길'부터 찾아야 한다. 최저임금 갈등 '진원지'인 강남 아파트도 찾아가고 9500가구가 입주하는 송파 아파트 단지에 분양권 매물 '씨'가 마른 미스터리한 현장도 찾아가 이유를 들어보길 바란다. 자신이 만든 규제 울타리 속에서만 생각하고 민원을 '호환마마'처럼 겁내는 공무원들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왕년에 '경제정책 저격수'였던 정치인 김현미 장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지용 부동산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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