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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손해나면 배임? 배임죄 재정비해 경영 혼란 줄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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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배임죄⑤]재계 "선진국처럼 '경영판단의 원칙' 명문화 필요…무죄 나와도 기소단계 이미 범죄자 '낙인'"]

"4차 산업혁명기가 도래하면서 경영판단의 성공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 커지고 있다. 배임죄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기업이 혁신과 모험을 시도함에 있어 부담을 덜도록 법기준을 좀 더 명확히 할 필요는 있다"(한 재계 관계자)

◇"기업활동 위축…'경영판단의 원칙' 명문화 필요"=재계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화하는 게 배임죄의 모호한 부분을 보완해 업계 혼란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합리적인 경영판단이 사후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결과를 야기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원칙이다. 독일과 호주는 회사법에 이 원칙이 명문화돼 있다.

이명수 자유한국당 의원이 2013년 기업인의 경영판단 결과에 따른 책임 추궁 요건을 명확히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실제 개정이 이뤄지진 않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판례로 경영판단의 원칙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곤 하나 명문화된 것이 아니어서 여전히 다툼의 여지가 크다"며 "오너나 경영진은 M&A(인수합병)나 투자, 신사업 진출, 사업 재편 진행과정에서 실패할 위험을 감수하고 사업판단을 하는데 단지 결과 측면에서 '손해'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기소가 이뤄질 수 있어 이는 경영상 애로사항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한상의가 지난 2013년, 국내기업 292개사를 대상으로 '배임처벌이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기업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응답률이 49%로 조사됐다. 또 배임죄 처벌로 경영차질을 겪은적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9.6%가 '있다'고 답했고 배임처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적용 및 처벌기준 불명확'(83.2%)을 꼽았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2013년 이후 비슷한 주제로 대규모 공식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은 없지만 기업들이 배임처벌에 대해 느끼는 부담감은 여전하다"며 "최근에는 (기업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와도 맞물려서 배임죄의 적용 요건을 분명히 해달라는 주장을 제기하기조차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14년 '판례로 본 배임죄의 문제점'이란 보고서에서 특히 배임죄에서 빈번하게 문제되고 있는 계열사 지원의 경우에 있어 형사상 책임을 면책해 주는 '로젠블룸 원칙'을 상법에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로젠블룸 원칙은 프랑스의 1985년 대법원 판결에서 비롯된 것으로, 계열사간 내부거래에 있어서 어떤 한 계열사의 재산 또는 신용에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전체 그룹 입장에서 손익을 따져볼 수 있도록 허용한 법리다.

실제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배임·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이낙영 전 SPP조선 회장 등이 항소심(2심)에서 계열사 지원 관련 일부 유죄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판단,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환송했다.

◇재계 "의사결정 과정 남겨놓는 수밖에…무죄 나와도 이미 떨어진 신뢰 회복 어려워"=배임죄 관련 무죄율이 높아지는 추세라지만 이는 경영활동에 큰 도움이 안된다는 지적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배임죄로 기소돼 대법원 판결이 나기까지 족히 2년은 걸리는데 기소단계부터 경영인은 이미 범죄자로 낙인 찍힌다"며 "배임죄 무죄율이 높다는 것은 결국 배임죄 규정이 얼마나 모호한지를 알려주는 근거이고 대법원에서 무죄판단이 나와도 기업으로선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지 오래"라고 말했다.

모호한 법규정이 재정비되기 전까지 기업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책은 의사결정 과정을 남겨놓는 정도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기업들로서는 경영 판단을 함에 있어 이사회를 거치고, 감사의견을 듣고, 외부기관의 자문을 구하는 등 절차적 통제를 꼼꼼히 하는 수밖에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재판에 넘겨질 수 있다는 부담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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