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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화해·치유재단 거취, 한·일 갈등의 새 불씨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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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수 세종연구소장

"위안부 문제 해결 선택지 많지만

사후조치 잘 관리하는 게 더 중요

화해·치유재단 다방면으로 활용

피해자 명예회복 함께 고민을"

오태규 검토 TF 위원장

"'정대협 설득하라' 일본 요구 수용

비공개 부분 보면 진짜 잘못된 합의

외교협상 대상 안 삼는 건 잘한 일

'국제사회 규범' 문제로 접근해야"

'위안부 합의 논란' 전문가 대담
중앙일보

진창수 세종연구소장(왼쪽)과 오태규 전 위안부 합의 검토 TF 위원장이 11일 중앙일보 본사에서 한일 관계 개선의 걸림돌이 된 위안부 합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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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외교 논란에 쌓였던 12·28 위안부 합의의 후유증이 잦아들 줄을 모른다. 결정적 문제가 있다는 '검토 태스크포스(TF)'의 결론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합의를 깨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일본의 반발은 예상을 훨씬 넘을 정도로 강경하다.

북핵 문제로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한 시점에서 여전히 위안부 문제가 한일 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검토 TF을 이끌었던 오태규 위원장과 한·일관계 전문가인 진창수 세종연구소 소장의 논쟁을 통해 새 해법을 모색해 본다. 두 사람은 대담 내내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지만, 정반대의 처방을 내놓으며 격론을 벌였다.

중앙일보

9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는 모습을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가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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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2015년 이뤄진 위안부 합의를 어떻게 평가하나.



A : 진창수(이하 진): 위안부 합의는 내용도 그렇지만 이행에서도 한·일 모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합의 당시 여론은 60 대 40 정도로 긍정적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합의 이후 한국에선 대통령이 피해자를 만나 소통하지 않았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털끝만큼 추가로 사죄할 생각이 없다고 아베 신조 총리가 밝혔다. 그때부터 합의가 잘못됐다는 비판이 커졌다. 정부가 사후 관리를 잘해야 했는데 제대로 소통하지 않아 문제가 커졌다.

오태규 (이하 오):고노 담화, 여성기금, 사사에 안(案) 등 그간 일본이 취한 몇몇 위안부 관련 조치는 가해자로서 일방적으로 사과나 보상을 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번 위안부 합의는 일본 측에서도 한국에 뭔가를 해달라고 요구했던 점에서 과거와는 달랐다. 문제 해결의 틀이 완전히 바뀐 셈이다. 전에는 이번처럼 주고받기식으로 논의된 적이 없다. 이런 변화의 심각성에 깨달아야 했다. 위안부 문제가 주고받기할 사안이냐. 이를 인식하지 못한 우리 외교의 수준에 큰 좌절감을 느꼈다.


Q :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A : : 실은 피해자 중심 접근(victim centered approach)가 맞는 용어다. 이는 우리가 만든 게 아니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1993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의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쌓여온 개념이자 규범이다. 핵심은 원상회복이나 이게 불가능하면 책임자 처벌, 사죄·배상 등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희생자를 개별적으로 찾아가 해결하는 것만이 피해자 중심 접근이 아니다. 피해자 단체와 국제 사회 등이 이뤄온 규범에 맞게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정부가 이런 인식을 갖고 위안부 문제에 접근했느냐를 살폈다. 이 대목에서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었다.

: 피해자 중심주의란 피해자를 중심으로 소통하자는 것이다. 외교적 교섭을 하게 되면 피해자 목소리를 그대로 합의에 반영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부인하는데도 정대협을 중심으로 한 피해자들은 법적 책임 인정은 물론 책임자 처벌까지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염두에 두더라도 교섭에서 완전히 관철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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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규 전 위안부 합의 검토 TF 위원장.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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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밝힌 정부 대응책을 어떤가



A : : 강 장관 발표에는 3가지 메시지가 담겨있다. 첫째는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둘째, 이 문제로 해결된 게 아니다. 셋째, 일본이 낸 10억 엔은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한 뒤 나중에 일본과 협의해서 정하겠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는 국내의 여러 목소리와 일본과의 관계 등을 고민한 끝에서 나온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본다.

: 문재인 대통령이 합의에 문제가 많다고 한 만큼 많은 전문가들이 파기로 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강 장관은 국제관계와 피해자 양쪽 간의 균형을 고려해 절충안을 내놨다고 본다. 절충안에 대해서는 양쪽 모두 불만을 갖기 마련이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란 누구도 100% 만족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결국 여론이 여기에 만족할 수 있게 사후 조치가 중요하다. 처음에는 한일관계가 악화할 게 분명하다. 때문에 일본을 잘 설득을 하는 능력과 의지가 중요하다. 위안부 문제는 여러 선택지가 있다. 어떤 선택지를 뽑느냐보다 사후 조치를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Q : 어떻게 풀어야 하나.



A : : 우리가 외교협상을 안 하겠다고 나서면 김영삼 시대로 돌아가는 셈이다. 도덕적 우위의 관점에서 일본이 자발적으로 사죄와 반성을 하게 유도하자는 거다. 문제는 이런 전략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일본의 분위기는 전보다 훨씬 보수화됐다. 일본이 사죄와 반성을 해야 한다는 우리의 입장은 똑같은데 일본은 반대로 가고 있다. 사실 김영삼 정부 때만 해도 일본 내 양심세력들이 많았다. 하지만 일본 사회가 갈수록 보수화되면서 합의를 지키는 자체가 도덕적 기준처럼 후퇴했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려면 이런 변화까지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



: 진 소장의 인식은 상황론에 너무 치우친 듯하다. 위안부 문제 등을 풀 때 일본 내 자유주의 세력이 약화되거나 아베 정권이 우경화된 것까지 고려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어떤 원칙에서 접근할지가 가장 중요하고, 이를 실현하는 방법은 뭔지 고민해야 한다. 일본이 계속 재협상 불가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는 ‘재협상 요구가 아닌 국제사회의 규범을 준수하라’는 입장이란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외교 협상의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는 것은 잘한 선택이다.

어차피 최대 문제는 ‘피해자 중심적인 접근'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본에 요구한 것도 보편적 인권문제의 해결 원칙을 스스로 지키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10억 엔을 어떻게 처리할지의 문제다. 어려울수록 충분히 숙성된 논의를 통해 해결해야지, 기간을 정해 성급하게 접근해선 안 된다. 피해자, 관련 단체는 물론 각계의 의견을 들어가면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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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수 세종연구소 소장.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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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반발하는 일본을 어떻게 다뤄야 하나



A : : 일본의 반응이 그렇게 강한 반발이라고 보지 않는다. 2년 전 부산 일본 문화원 앞 소녀상 문제가 일어나자 일본은 대사 소환, 통화스와프 재개 협상 중단 등 4가지 조처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재협상 불가라는 원칙적인 입장만 밝히고 있다. 일본도 이번 문제를 한일관계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걸 원하지 않는 분위기다. 우리가 할 말을 했으니 일본도 자기 할 말을 하는 셈이란 얘기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합리적 대화가 가능해지면 문제를 조금씩 풀어가는 게 바람직하다.

: 정부 조치가 나오려면 피해자들과 소통이 필요해 시간이 꽤 많이 걸릴 거로 예상됐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진행되다 보니 일본과 충분한 소통이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한·일 정부 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예방외교가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우리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일본에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Q : 일본 측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A : : 외교 문제는 진정성이나 후속 조치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물론 여론을 누그러뜨리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협상 내용 자체다. 공개된 부분만 봤을 때는 어느 정도 노력한 부분이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비공개 부분을 보면서 진짜 잘못된 합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정대협을 설득해 달라는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우리나라가 제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 생겼다. 비공개 부분을 TF가 공개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비공개 부분이 들어갈 때와 안 들어갈 때, 합의에 대한 평가는 100% 달라진다. 결국 고민 끝에 훨씬 더 문제가 심각한 비공개 내용도 밝히게 된 것이다.

: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건 일본이 진정성 있는 사죄를 안 했기 때문이다. 피해자 중심의 접근을 못 했다는 점을 설명했는데 일리 있는 지적이다. 교섭 당사자는 누구든 원칙에 따라 얘기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로 내려오면 이 원칙에서 조금씩 벗어나 타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앙일보

남정호 중앙일보 논설위원, 진창수 세종연구소 소장, 오태규 전 위안부 검토 TF 위원장(왼쪽부터)이 11일 중앙일보 본사에서 대담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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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화해·치유재단은 어떻게 해야 할까



A : : 이 재단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여러 형태로 활용할 수 있다. 합의문에는 '일본의 성의 있는 조치를 전제로 양국이 협력해 나간다'는 문구가 있다. 일본이 화해·치유재단에 10억엔을 냈다고 그걸로 끝난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피해자 명예 회복과 치유를 위해 재단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양국이 머리를 짜내야 한다. 다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새 재단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이럴 경우 일본 측에서 합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항의할 가능성이 크다. 자칫 화해·치유재단의 거취문제가 앞으로 한·일 갈등의 씨앗이 될지 모른다.

: 화해·치유재단은 10억 엔 처리와 불가분의 관계다. 지금도 사실상 기능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일본과 10억 엔의 처리 방향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재단의 문제도 정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정대협은 자신들의 원칙에 안 맞으니 정부 발표에 반발할 것이다. 하지만 운동의 원칙적 목소리와 정부의 현실적 대안은 다를 수 있다. 방향이 같아도 속도와 높이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정부가 이들과 접촉해 신뢰를 얻으면 유연한 정책이 가능할 것이다.


오태규 위원장(58)=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한국일보를 거쳐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때 합류했다. 29년간 한겨레신문에 근무하며 논설실장까지 역임했다. 도쿄 특파원을 거쳐 한·일 관계에도 밝다. 이런 인연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팀(TF) 위원장에 임명돼 5개월간 위안부 합의를 재검토하는 책임을 맡았다.

진창수 소장(57)=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도쿄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일본 문제 전문가. 1996년 세종연구소에 들어가 줄곧 한일 관계를 연구하며 부소장을 거쳐 2015년부터 소장을 맡고 있다. 2005년에는 '1965년 기본조약 문서공개' 민간위원을 역임했고 한일 관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화해·치유재단 이사로 일했다.

사회=남정호 논설위원

정리=황병준·윤가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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