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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아이가 학대를 당했다…엄마들이 어린이집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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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초기부터 가시밭길…그래도 내 아이가 웃었다

아이가 자폐 스팩트럼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얼핏 보기에는 보통의 평범한 아이들과 다르지 않지만 내 아이는 묘하게 주변과 섞이지 못했다. 혼자 놀거나 과잉행동을 했다. 상호작용도 되지 않았다. 일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보내도 번번이 문제가 생겼다. 아이 아빠가 경기도에 자폐 스팩트럼 장애 자녀를 가진 부모가 설립한 대안학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한 번 가보자”고 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여러 번 소개된 적이 있던 학교장은 “여러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아이의 자폐 스팩트럼 장애를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줄기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잡고 싶었다. 학교는 입학금 개념의 후원금으로만 1000만원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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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이 ‘어린이집’을 만들다

학교를 넉 달 정도 다니던 어느 날 아이에게서 이상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는 깜깜한 화장실에 인형을 세워놓았다. 한참 뒤 화장실로 들어가 “벽 봐, 벽 봐, 말 잘 들을 거야? ‘잘못했어요’ 물어봐야지”라며 인형을 혼냈다. 자폐 스팩트럼 장애를 갖고 있지만 말을 할 줄 알았던 아이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을 따라하고 있었다. 아이는 잘 놀다가도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등 이상행동을 반복했다. 나중에는 눈을 뒤집고 입을 비트는 틱 장애까지 왔다. 학교를 찾아가 확인한 폐쇄회로(CC)TV 속 아이는 선생의 손에 질질 끌려나가고, 벽을 보고 서 있었다. 피해자는 우리 아이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도 이상행동을 했다. 그나마 하던 말도 퇴화하고,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학대하는 아이도 있었다. 피해아이 엄마 중 한 명이 2016년 1월 학교장 부부를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으로 고소했다. 결과는 증거불층분에 따른 불기소 결정이었다.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학교 안 CCTV는 묘한 사각지대가 있었다. 어떤 날은 저장도 돼 있지 않았다. 대부분의 자폐 스팩트럼 장애 아동들은 말을 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증언을 할 수 없었다. 엄마들은 지난해 2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와 함께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더 이상 대안학교를 신뢰할 수도, 다닐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 아이를 언제까지 치료실만 전전하며 키울 수도 없었다. 어느날 한 아이의 엄마가 보육책자를 들여다보다 말했다. “우리도 어린이집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엄마들이 뭉쳤다. 기껏 일이라고 해봤자 회사 사무직 정도의 일만 해봤을 뿐 조합 설립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엄마들이 ‘부모협동 어린이집’을 만들었다.

2016년 3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모아랑 어린이집’이 세워졌다. 준비기간은 두 달 정도밖에 없었다. 조합 설립에 첫 번째 요건인 조합원 모집이 필요했다. 조합 설립에 필요한 최소인원은 11명이었다. 피해아동 엄마들을 비롯해 다른 엄마들을 수소문해 인원수는 채웠다. 하지만 유치원 과정부터 초등교육까지 엄마들 손으로 아이들을 키워보겠다는 원대한 꿈은 법 앞에서 무참히 깨졌다. 영유아보육법·유아교육법 등에 따르면 어린이집은 필요에 따라 만 12세 어린이까지 수용할 수 있다고 돼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장애아라도 만 7세가 넘어가면 1~2년 유예는 가능하지만 결국 특수학교 또는 일반학교 도움반을 가야 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조합 설립에 동참했던 엄마들은 떠났다.

일반 어린이집으로 시작한 조합 형태를 장애전문 어린이집으로 바꾸는 절차도 복잡했다. 자폐 스팩트럼·지적장애 아이들만 수용하는 부모 협동 어린이집은 전국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전례가 없으니 시청·구청 직원들의 말도 오락가락했다. 장애전문 어린이집으로 바꾸려면 계단을 없애는 것부터 해야 할 공사가 많았다. 시청 담당직원은 장애전문 어린이집으로 운영하면 교사 급여 지원은 없어도 아이들 지원금은 다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만 믿고 시설 정비에만 300만~400만원의 돈을 들였다. 그러나 공사 후에도 장애전문 어린이집으로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애전문 어린이집으로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장애전담 교사 경력부터, 어린이집 시설, 원장의 자격까지 모두 다 달라져야 했다. “밤새 찾아봤다”며 관련 규정을 보여주는 공무원의 모습이 미덥지 않았다. 이미 함께 일하고 있는 교사들을 교체하고 어린이집 규모를 늘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장애전문 어린이집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차선책으로 장애아 통합 어린이집으로 승인을 받았다. 이번에는 보육료 지원이 발목을 잡았다. ‘장애아동 복지지원법’에 따르면 만 5세 이하 미취학 장애아동은 어린이집이 정부로부터 43만8000원의 ‘장애보육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장애아 통합 어린이집은 전원이 장애아라도 ‘장애보육료’를 받을 수 없었다. 현행법상 장애아 통합 어린이집은 시설정원의 20%만 장애보육료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었다. 시청 직원에게 “당신들 말만 믿고 공사를 했는데 어떡할 거냐”고 따졌다. 시청은 아동 3명에 대해서만 주기로 한 장애보육료를 4명으로 늘려줬다. 나머지 8명의 아이들은 지금도 일반보육료(29만9000원) 지원만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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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펼쳐진 가시밭길

시청의 오락가락 행정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어린이집에 지원되는 보조금은 특수교사 1명의 월급 일부(146만원)와 보조교사 1명에 대한 월급이다. 현재 원장 대행을 맡고 있는 서영이 엄마는 “시청에서 보조교사 1명분에 대한 보조금이 나올테니 고용하면 된다고 해서 넉 달간 함께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보조금을 모두 돌려달라’는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보조교사 보조금 지원대상이 아닌데 잘못 지원을 했다는 것이었다. 엄마들은 또다시 항의했다. “사람을 뽑아서 넉 달 만에 그만두게 하면 이 사람이 근로기준법을 들고 우리를 고발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따졌다. 시청은 그래도 지원금을 모두 돌려달라고 했다. 그나마 구청이 지난해 9월 특수교사 1명과 치료사 1명, 보조교사에 대한 지원금을 교부하기로 하면서 숨통이 트였다. 한 달에 약 300만~400만원 정도다. 서영이 엄마는 “잠시나마 자금에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남는 예산에서 일부를 지원하는 거라 일시적인 것으로 안다”며 “올해도 그만큼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부모협동조합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하기도 빠듯한 엄마들에게 경제적인 부분은 늘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조합을 만들기 위해서는 출자금이 필요했다. 처음 만들 당시 조합 비용으로만 엄마 1인당 1000만원씩 냈다. 어린이집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다. 어린이집에는 교사 1명당 아이 3명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원장을 포함해 5명의 교사가 상주한다. 이들 인건비가 조합 운영비의 80%를 차지한다. 그외 어린이집 월세부터 각종 공과금 등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다. 때문에 엄마 1명당 매달 85만원의 조합비를 내야 어린이집이 운영된다. 대표를 맡고 있는 희원이 엄마는 “원아 모집 설명회를 하면 모이신 분들이 ‘왜 이렇게 매달 내는 돈이 많으냐’는 문의를 하신다”면서 “창립멤버들은 아이들이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어 ‘이 돈을 내더라도 안전하게 내 아이를 키우자’는 생각으로 내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부담이 될 만한 돈”이라고 말했다. 다만 새로 모이는 엄마들에 대해서는 기존 엄마들이 조합 가입비 일부를 포기하기로 결정해 부담을 줄였다.

자폐아가 소외되지 않는 어린이집

3일 만난 엄마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어린이집을 운영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올해 7살이 된 형원이 엄마는 자신의 휴대전화 속에 담긴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우리 아이가 처음 여기 왔을 때는 단 5분도 못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이 사진을 보세요. 지금은 아이가 정말 즐거워해요.” 엄마들이 대한민국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장애아 부모 협동 어린이집’을 만들고, 만 2년째 꾸려나가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엄마들이 손수 만든 어린이집에서는 아이가 학대당하지 않고 밝게 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영이 엄마는 “우리 어린이집에서는 12명의 아이들이 모두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이곳에 오기 전 거쳤던 장애아 통합 어린이집은 아이들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어린이집 야외활동이 있을 때는 노골적으로 빠져달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어떤 원장은 아이 엄마에게 “얘를 데리고 나갈 때는 미아 방지 줄을 달고 싶다”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 어린이집 아이들은 모두가 ‘‘특별한’ 아이들이다. 다함께 손잡고 야외활동도 하고,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직접 주문하는 연습도 한다. 덕분에 외식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서영이네는 이제 외식도 가능해졌다. 민규 엄마는 내년에 일반 어린이집 장애통합반에 도전한다. 그는 “그동안 (아이 치료를 위해) 서울이며 평택이며 곳곳을 전전하며 다녔는데 이곳에 온 이후로 아이가 눈에 띄게 안정되고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이제는 자폐 스팩트럼 장애를 가진 내 아이가 조금은 덜 힘들게 보통의 평범한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생겼다. 그래서 어린이집을 만들어 ‘조금 느린’ 장애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엄마들의 활동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자폐도 중증에서 경증까지 다양하다는 뜻으로, 한쪽 끝에 심한 자폐성 장애가 위치하고 다른 한쪽 끝에 상대적으로 가벼운 상태의 자폐성 장애가 위치한다는 연속선상의 개념이 반영돼 있는 진단명.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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