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의 대부’라 불리는 고(故) 김근태 의원이 감옥에서 아내 인재근씨(현 국회의원)과 주고받은 편지글을 모은 ‘젠장 좀 서러워합시다’가 출간됐다. 편지를 엮은 이는 두 사람의 딸인 김병민씨(김근태재단 기획위원)다.
2011년 12월30일 김근태 의원은 타계했고 병민씨는 병상에 있는 아버지의 부재 속에 한달여 앞서 결혼식을 치른 바 있다. 병민씨는 당시 “아버지께서 많은 분의 주례를 서주셨는데 정작 제 결혼식에는 참석조차 못하신다고 생각하니 서운한 생각도 들었다”면서도 “그렇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의 수배와 수감기간 동안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마음은 함께 있었던 것처럼 아버지가 제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결혼식을 치를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병민씨의 표현처럼 김근태 의원은 옥중에서, 육아와 옥바라지에 힘겨워하는 아내에게 격려를, 옆에서 보살펴주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무조건’인 사랑을 편지에 담아 보냈다. 김 의원은 수감 생활 중에 아내의 생일 축하 노래 ‘사랑의 미로’를 면회실 창 너머 아내에게 불러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보낸 김 의원의 편지 한 토막이다. “그렇게 자신 있게 불렀던 이 노래를 유리창을 통해 엄마를 마주 보면서 접견실에서 부르고자 하니까 마구 떨리는 것 아니겠니.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해도 잘 안 되고, 그래서 몇 번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목소리가 떨리고 음정은 불안해지다가 틀리고, 또 그런 중에서 목은 메어오고, 인재근 엄마의 눈에 고인 눈물이 보이고 그래서 더욱 목이 메고, 노래가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된 채 끝나고 말았다.”
인재근 의원이 남편에게 보낸 편지는 이번에 처음 외부에 알려졌다. 인 의원은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남편의 메모라며 딸에게 보낸 편지도 함께 공개했다.
“그 종이에는 김근태 아빠가 주례를 설 때마다 가지고 다녔던 직접 쓴 메모가 있었다. ‘서로의 건강과 이웃의 평화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라’,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 ‘서로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여라’라는 내용이었다. 아빠가 병원에 입원할 때 입고 갔던 잠바 주머니에 내 청첩장과 주례사가 접혀서 같이 들어 있었단다. 끝까지 ‘딸 바보’였던 아빠가 준 마지막 선물. 김근태의 주례사였다.”
책의 제목 ‘젠장 좀 서러워합시다’가 나온 일화도 담겨있다. 수배생활 기간인 1983년 3월 수배생활의 끝을 염두에 둔 편지다. “한두 번쯤 복받쳐오는 것이 있을 것이고, 필경 이것은 서러움이었을 게요. 뭐 반드시 서럽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고, 태엽 풀린 유성기처럼 박자가 맞지 않는다고 난리가 날 일도 아니고, 젠장 좀 서러워합시다….” 1992년 8월, 김근태 의원은 출소하며 가족들과 사진관에서 기념사진 한 장을 찍었다.
김근태-인재근 부부와 가족들간에 오간 편지들은 오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근태 6주기 추모전 '따뜻한 밥상'에서도 만날 수 있다.
김근태 전 의원은 1983년 사회운동단체인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결성을 주도하며 초대 의장을 맡았고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민주화와 청년 운동세력을 대표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지내고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에도 나섰지만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2011년 12월 30일 영면했다.
◇젠장 좀 서러워합시다=김병민 엮음. 알마 펴냄. 244쪽. 1만4000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9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린 민주주의자 고 김근태 선생 6주기 추모전 '따뜻한 밥상'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2017.12.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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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민 기자 baesm1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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