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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세상사는 이야기] 고려의 인쇄술로 책을 찍어 보급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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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보통의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은 세 가지 정도 같다. 케이팝이나 드라마, 삼성, 북한이다. 그들은 여전히 한국에 대해 잘 모른다. 한국인이 한자나 일본 문자를 사용하는 줄 아는 사람도 많다. 몇 년 전 해외 행사에서 만난 작가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았던 많은 나라가 그렇듯이 한국도 식민지 역사 이후 일본 문자를 사용하는 줄 알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한글로 내 이름을 적어 보여주며, 한글은 세종이라는 왕이 발성기관을 본떠 만든 과학적인 표음문자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한국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나라라고 강조했다.

사실 나는 학창시절부터 주입받아온 이른바 '국뽕'에 거부감이 있다. 한민족의 우수성이니 찬란한 문화유산, 삼천리 금수강산 같은 용어는 마치 '국산품 애용'이란 말처럼 당위에 의해 내 자유의지가 제한을 받는 느낌이 든다. 백의민족, 동방예의지국, 조용한 아침의 나라 같은 수사에 깃든 선입견도 달갑지 않다. 단일민족 판타지야말로 우리 사회를 배타적이고 편협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외국인을 만나면 갑자기 한국의 홍보대사를 자청하게 된다. 끊임없이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창시절 세뇌된 대로 '뛰어난 문화를 갖고 있으나 인정받지 못하는 약소국 국민'의 촌스러운 자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어쨌든 내 설명을 들은 독일 작가는 확실히 놀란 표정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사과를 했다. 한국이 14세기부터 인쇄술이 발달했다 하니 많은 사람들이 인쇄된 책을 읽었을 테고 틀림없이 문화와 기술에서 강국이었을 것이다, 나의 무지를 용서해라, 라고. 하지만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내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납 활자로 책을 찍기 시작한 것은 조선 말기 박문국이 세워진 뒤이다. 그전까지는 많지 않은 목판 인쇄물과 필사본에 의존해왔고 특히 소설은 개화기까지도 필사본이 흔했다. 고려 때에 이미 금속활자를 발명했는데, 우리는 왜 책을 찍어 널리 보급하지 않았을까. 자음과 모음을 배열해서 쓰는 표음문자와 달리 표의문자인 한자는 매번 글자를 새로 주조해야 하기 때문에 책 제작이 쉽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하지만 의구심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네덜란드의 글꼴 디자이너가 청주의 고인쇄 박물관을 방문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는 구텐베르크보다 먼저 발명된 고려 금속활자본의 현장을 방문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 글을 통해 나의 의문이 조금 풀렸다. 구텐베르크가 사용한 금속은 값싼 납이고 한국의 금속활자는 비싼 동으로 만든 것이었다. 구텐베르크의 납 활자가 찍은 책은 급속도로 보급돼 유럽에 종교개혁과 과학혁명과 르네상스를 가져왔다. 그러나 고려의 값비싼 동 활자는 수백 년이 지나도록 국가 주도로만 이루어졌고 대량 보급될 수 없었다. 또 한 가지, 구텐베르크의 활자는 인쇄기에 들어가 책을 찍어냈지만 고려에는 인쇄기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인쇄기가 필요 없었다. 부드러운 닥종이에 농도가 높고 기름진 먹, 즉 질 좋은 종이와 먹을 만드는 기술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손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인쇄가 되었던 것이다. 결국 한국의 금속활자가 책의 보급으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값비싼 재료를 사용했고 금속주조와 제지 기술이 너무 뛰어난 탓이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처럼 기술력이 뛰어났다면 값싼 금속과 값싼 종이를 사용하고 인쇄기를 만들어 책을 제작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조상에게 없었던 것은 기술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보급하려는 의지가 아니었을까. 구텐베르크는 성직자들만 갖고 있는 비싼 성경책을 일반인들도 쉽게 읽게 하려고 인쇄술을 발명했고 그것은 유럽 내 지식의 전파로 이어졌다. 반면 조선의 지배계급에게는 사회 전반의 지식 수준이 아닌 자신의 학문과 신분사회의 위계질서가 더 중요했던 듯하다. 세종은 한글을 만들어놓고도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하는 조정 대신들과 싸워야 했다.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지식 독점체계가 무너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뛰어난 인쇄술로 책을 찍어 보급했다면, 내가 일제강점기를 들먹이며 일본 문자를 쓰냐는 외국인의 질문에 발끈해서 본의 아니게 홍보사절이 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 그러나 과거 신분제 사회처럼 빈부나 성별이나 출신 등을 기준으로 차별과 편견을 만드는 시대착오적인 일이 있는 듯해 해본 말이다. 행복한 사람들 가운데 살아야 나도 행복하다. 모두에게 따뜻한 연말이 되었으면 한다.

[은희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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