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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알바트로스] 박성현이 자신에게 `80점` 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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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80점은 참 애매모호한 점수다. 아주 잘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못한 점수도 아니다. 만약 자녀가 학교 시험에서 80점을 받고 왔다면 '만족의 칭찬'보다는 '노력의 격려'를 할 것이다. 올해 누구보다 빛나는 활약을 펼친 '골프 여왕' 박성현은 시즌을 마치고 자신에게 바로 그 점수 '80점'을 줬다. 박성현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1978년 낸시 로페즈 이후 39년 만에 신인왕, 상금왕, 올해의 선수 '3관왕'을 달성했다. 막판까지 렉시 톰프슨(미국)과 경쟁을 벌였지만 결국 최저타수상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80점만 줬을 수 있다. 그럼 올해 국내 여자골프 무대에서 상금왕, 올해의 선수, 다승왕, 최저타수상까지 4관왕을 독식한 이정은은 자신에게 몇 점을 줬을까. 역시 '80점'이다. 박성현 이정은과 함께 올해 눈부신 활약을 펼친 유소연도 스스로에게 80점을 부여했다. 유소연은 올해 골프 인생 평생의 꿈인 세계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정도가 아니다. 골프뿐 아니라 올해 두드러진 성적을 낸 스포츠 스타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활약에 '80점'을 줬다. 한국 선수로는 14년10개월 만에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대회 정상에 선 정현, 2017 KEB하나은행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클래식 감독상 수상자로 선정된 프로축구 전북 현대 최강희 감독도 올해 자신의 활약에 80점을 매겼다. 아마추어 시절 2승을 포함해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통산 10승을 거둔 김대섭 역시 올해 은퇴를 하면서 "내 골프 인생은 80점이었다"고 평했다.

남에게 주기에는 조금 야박한 점수 '80점'은 스스로에게 줄 때는 최고의 점수였던 것이다. 그럼 부족한 20점은 무엇일까. 그들에게 남은 20점은 과거에 대한 아쉬움이자 미래에 대한 기대이고,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는 다짐인 동시에 자신에 대한 채찍질이다.

박성현은 "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남겨둔 20점은 앞으로 채워야 할 부분이고, 노력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에 대한 다짐이었던 것이다. 이정은 역시 "우승 기회가 더 있었는데 놓쳐 아쉬웠고 그런 부분을 더 보완해서 더 잘해 보려고 80점만 주고 20점을 남겨 뒀다"고 했다. 유소연도 "점수를 더 주면 좋겠지만, 세계랭킹 1위에 있었을 때 독보적인 퍼포먼스를 발휘하지 못한 부분이 아쉬워 20점은 남겨뒀다"고 말했다.

만일 스스로에게 90점 이상을 줬다면 그건 이미 자신의 능력 이상을 발휘한 것이 된다. 앞으로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들 것이란 자포자기의 의미가 담겼을 수도 있다. 그것뿐이겠는가. 80점에는 인정이 있고 겸손이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도 내포돼 있다. 100점에 가깝다는 것은 빈틈이 없다는 인상을 준다. 남에게 너무 차가운 느낌을 줄 수 있는 점수인 것이다. 인생은 약간 부족한 면도 있어야 노력의 여지도 남는다.

경제학에는 소득의 불균형 분포를 나타내는 '파레토의 법칙'이란 게 있다. 흔히 '80/20 법칙'으로 통하는 것으로 상위 20% 부자들이 80% 이상의 소득을 독점하고 있는 특성을 설명한다. 80%의 효과는 20%의 노력으로 얻어진다거나 20%의 제품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개인으로 보면 20%의 중요한 일에 노력을 집중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효율적인 시간 관리의 의미로 확장된다. 자신의 활약에 80점을 준 스포츠 스타들 역시 부족한 20점에 집중해 더 성공하겠다는 다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남은 20점은 희망과 노력, 그리고 더 발전할 것이라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올해 당신의 골프는 어땠는가. 새해 다짐했던 것을 얼마나 이뤘는가. 혹시 상대에게 무례하지는 않았는가. 스스로에게 "80점을 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최선의 골프'를 했는가.

[오태식 스포츠 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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