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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인쇄소 문 여니 펍이?…SNS 사로잡은 을지로 반전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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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십분의일이 위치한 을지로 인쇄골목


오래된 인쇄가게와 세월의 향기를 풍기는 백반집이 즐비한 서울 을지로3가 인쇄 골목. 지난 13일 오후 6시 인쇄 기계들이 작동을 멈출 무렵 골목 안쪽 작은 샛길로 향하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걸음을 옮겼다. 휴대폰 지도 앱과 골목을 번갈아 살피는 눈에는 '이런 곳에 정말 펍이 있다는 거야?'는 의심이 가득해 보였다.

청년 사업가들이 카페·펍을 개업하며 SNS서 입소문이 난 을지로 인쇄 골목. 이곳의 카페·펍은 '반전 가게'로 불린다. 오래된 상가 사이 간판도 없이 영업하지만 내부만큼은 어떤 번화가의 가게보다 '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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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의일 입구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총 15곳의 반전 가게가 을지로 인쇄골목에 자리잡고 있다. 오픈 1주년을 맞은 와인바 겸 펍 십분의일은 이 골목의 초창기 반전가게다. 십분의일이란 이름은 열 명의 멤버들이 월급의 10%씩 투자해 운영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을지로 골목 중에서도 유독 깊숙한 샛길에 위치해 있지만 SNS에는 날마다 십분의일 방문 인증샷이 올라온다. 가게에 상주해 있는 멤버인 이현우 대표(30)를 만나 십분의일과 을지로 골목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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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대표 [사진 = 윤해리 인턴기자]


Q) 을지로 인쇄골목서 카페 겸 펍을 오픈하게 된 이유는?

-금전적인 문제가 가장 컸다. 이미 상권이 발달한 곳의 임대비용은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비쌌다. 그래서 이미 활성화된 곳이 아닌 문래동 등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장소 몇 곳을 후보로 꼽았다. 을지로 3가도 후보 중 한 곳이었기 때문에 상권을 둘러보러 왔다 우연히 지금 가게를 오픈한 골목에 들어오게 됐다. 그리곤 건물에 붙여진 '임대'글자를 봤다. 넓은 장소, 번화가 보다 3~4배 저렴한 월세, 무권리금에 끌려 큰 고민 없이 바로 계약했다. '을지로 3가가 뜰 것이니까 우리가 여기를 선점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Q)오픈 한달 후 까지도 대문이 없었다고 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간판이 없는 상태다. 외관 리모델링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

-역시 금전적인 문제 때문이다. 임대 계약을 하고 나니 남는 돈이 없었다. 가게가 골목 안쪽 깊숙이 있기 때문에 간판을 달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간판을 보고 들어올 만한 장소는 아니지 않나. 십분의일이 오픈하기 전 을지로에 미리 자리 잡고 있던 두 곳의 가게도 간판 없이 영업하고 있었기 때문에 간판 없이도 장사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현관에 붙은 '십분의일'이란 종이가 간판 역할을 대신해준다. 대문의 경우 이곳이 원래 인쇄사였기 때문에 '디자인·인쇄'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어느 날 대문이 너무 허전해 그 스티커를 오려서 '맥주' '와인' 등으로 재조합해 붙여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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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의일 내부


Q) 밖에서 봤을땐 가게가 있는지 짐작이 되지않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찾아오는지?

-처음에는 찾아오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대문의 스티커도 손님이 없어서 청소하다가 붙인 것이다. 대신 멤버 열 명의 지인들이 자주 찾아와줬다. 그러다 보니 SNS서 입소문이 나고 언론 잡지 등에 소개됐다. 지금은 저녁 7시~11시까지는 항상 웨이팅이 있을 정도로 많은 분이 찾아와 주신다.

Q) 외관과는 다른 아기자기한 내부 인테리어가 SNS서 인기다. 공간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사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내부 인테리어는 전기 등 전문적인 부분을 제외하곤 전부 멤버들이 직접 완성했다. 셀프인테리어를 통해 절약한 비용도 꽤 크다. 외부 업체를 통하면 최소 80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는 견적을 받았다. 고심 끝에 멤버들끼리 직접 인테리어를 하기로 결심했고 총비용 2000만 원 선에서 해결했다. 다만 기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해 온라인을 참고했고 망치면 다시 하곤 했다. 내부 인테리어를 완성하기까지 약 3개월 정도 걸렸다. 가게를 꾸미고 있는 가구들은 전부 멤버들이 하나하나 모아온 것이다. 심지어 탁자 중 하나는 신혼부부 친구가 버려서 가져왔다. 멤버들의 취향이 다 다르다 보니 공간마다 각자의 개성이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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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대표 [사진 = 윤해리 인턴기자]


Q) 십분의일을 비롯해 을지로 인쇄골목에 펍·카페가 하나 둘 생기고 있다. 이 지역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 같은지?

-을지로는 '을지로스러운 분위기'가 있다. 이 근방에 미술 재료 화방이 많다 보니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이 근방에 작업실을 틀었다. 작업실을 겸사겸사 카페 겸 펍으로 꾸미면서 '반전카페'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십분의일이 처음 문을 열 때만 해도 을지로 인쇄골목에 작업실 겸 카페가 많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친해졌고 지금도 매일같이 만나 의견을 나누고 서로 이끌어주고 있다.

최근에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기고 여기저기 입소문이 나다 보니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트렌드의 영향을 받기 보단 이 공간에서 길게 운영하고 싶기 때문에 '을지로3가가 뜬다'는 분위기는 경계하고 있다. 십분의일은 언제 찾아와도 같은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오래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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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의일 내부 인테리어


Q) 십분의일의 앞으로 목표는?

-경제적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맞물려 우연히 알게 된 골목에서 운 좋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십분의일은 여러 사람의 생각이 섞인 공간이다. 멤버들과 회의를 해 싸우기도 하고 맞춰나가기도 하며 차근차근 가게 운영에 대해 정비를 해나가고 있다.

현재 멤버들과 '청년아로파'라는 그룹을 만들었다. 아로파가 가진 의미는 '협동과 공유'다. 또래 친구들이 공유하고 협동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십분의일의 최종 목표다.

다른 누군가가 청년아로파 시즌2 멤버를 꾸려 다른 지역에 2호점을 낼 수도 있다. 을지로3가의 십분의일은 묵묵히 1호점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도울 것이다.

[디지털뉴스국 노윤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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