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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공연 리뷰…러시아의 카리스마, 관객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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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연주 후 객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는 마추예프(왼쪽)와 게르기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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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곡은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 1막 전주곡이었다. 맨손으로 지휘하던 게르기예프가 이쑤시개 크기의 작은 지휘봉을 들자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관객도 그 끝으로 빨려 들어갔다.

소리가 잦아들고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손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기침 소리, 숨소리, 뒤척임 하나 없었다. 완벽한 고요가 찾아왔다.

격정적인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 열광적인 박수가 터져나왔다. 곳곳에서 기립한 관객들이 격한 환호를 보냈다. 러시아 음악계의 '차르'(러시아어로 황제)로 군림하고 있는 게르기예프와 이 시대의 비르투오소(매우 뛰어난 연주 실력을 가진 대가)라 불리는 데니스 마추예프의 카리스마가 한국 관객들을 홀린 밤이었다.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악단인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는 1988년 게르기예프가 음악감독직을 맡으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을 제치고 러시아 최고(最高) 오케스트라로 꼽히기도 한다.

12일 내한공연에서는 게르기예프의 지휘 아래 러시아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마추예프와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그리고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등 자신하는 러시아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190㎝가 넘는 큰 키, 긴 팔, 근육과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손목과 손가락. 1998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인 마추예프는 건반에 힘을 실은, 에너지 넘치는 연주로 유명하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첫 부분의 피아노 터치가 인상적인 곡이다. 이 부분은 크렘린의 종소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종소리'란 표현이 마추예프의 연주와 딱 들어맞았다. 피아노는 마추예프의 강렬한 타건을 하나하나 받아내 몸을 울려 소리를 냈다. 피아노가 건반 타악기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클라이맥스에서는 손가락 하나하나가 대포가 되어 소리를 터트렸다.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는 "마추예프는 폭주기관차 같았다. 강력하면서도 악보의 모든 걸 놓침 없이 잡아내는 실력이 경이롭다"고 평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대표 레퍼토리인 만큼 이견 없는 완벽한 무대였다. 게르기예프는 특유의 맨손 지휘로 고난과 비애를 떨치고 일어나 승리의 마지막 악장을 향해 나아갔다. 황 칼럼니스트는 "흠을 잡으려 해도 잡기가 어려운 무대로 해외에서 봤던 마린스키의 어떤 연주보다 이날 연주는 최고였다. 경지에 오른 악단과 지휘자의 화음이었다"고 평했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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