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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여왕개미처럼 경영하니 성공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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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개미를 연구하던 '생물학자'가 하루아침에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학교에서도 요리조리 피해다녀 보직을 받은 적이 없는데 난생처음 경영 경험을 하니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그러다 조직 경영의 답을 생태에서 찾았다. 여러 생명이 공존하는 숲이 말하는 것처럼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고 마음먹자 조직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63·사진) 이야기다. 그가 3년2개월의 초대 국립생태원장 경험을 돌아보며 처음으로 '경영서'를 펴냈다.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메디치)를 출간하며 13일 기자들과 만난 그는 "여왕개미는 알을 낳기만 할 뿐, 뒤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규율만 만들면 일은 나머지 일개미들이 한다. 나는 뒤에 숨어서 앞에서 드러나지 않는 여왕개미 같은 리더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3년 만에 생태원을 서천의 애물단지에서 매년 100만명이 찾는 핫플레이스로 만들었다. 비결은 '다윈 경제학'과 '생태 경영학'이다. 공생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심비우스', 생물의 협력하는 본성 등을 그는 경영에 접목시켰다.

처음 원장 발령을 받아 내려가자 조직의 간부는 그를 따돌리고 의사결정을 독점했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인 그를 경계하는 '늘공'(늘상 공무원)을 사로잡은 비법은 '밤무대의 황태자'가 되는 것이었다. 학자 최재천은 매일 오후 6시에 귀가해 연구하고 책을 쓰며 살아온 전형적인 '칼퇴형 인간'이었다. 그런 그가 재직 시절 내내 회식을 하지 않은 날은 손으로 꼽을 만큼 직원들과 어울렸다. 축구, 볼링, 당구도 직원과 함께 했다. '원격바'라는 것도 만들었다. '원장이 격주로 구워주는 바비큐'의 줄임말이다. 직접 앞치마 두르고 고기를 구워서 각 부서마다 한 명씩 불러서 저녁을 먹었다. 다른 부서 간에도 소통이 원활해졌다. 그렇게 아래 직원들을 사로잡고, 고참들은 '파격 인사'로 흔드니 그제서야 조직에 질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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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생태원 '제인 구달의 길'에는 제인 구달의 생명 사랑 십계명이 판자에 새겨져 걸려 있다. 그는 이 길을 걸으며 '경영 십계명'을 만들었다. '군림(君臨)하지 말고 군림(群臨)하라' '결정은 신중하게, 행동은 신속하게' 등 10가지를 고안했다. 네 번째 계명은 소통인데 그는 실제로 과묵해지기 위해 "어금니가 아플 정도로 이를 악물고 들었다"고 말했다. 마지막 계명은 '인사는 과학이다'인데, 식물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직원을 식물 연구직으로 발령해 조직에 활기를 보태기도 했다. 고 박태준 회장이 임명한 포항제철 초대 인사과장이었다는 아버지의 잔소리를 듣고 얻은 교훈이다.

그는 경영에 있어서 무엇보다 '공감'이 중요하다고 꼽았다. 그는 "최근 침팬지를 연구하는 프란스 드발의 '공감의 시대'를 번역했는데 인간만이 공감능력을 가진 게 아니라는 걸 밝힌 책이다. 쥐조차도 동료의 신음을 들으면 도와준다. 내가 얻은 교훈은, 공감은 길러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타고나지만 살면서 무뎌진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공감이 무뎌지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영을 이제 좀 알 것 같다고 했으니 다른 욕심은 없냐고 물었다. 그는 "한번으로 족하다. 매일 학교만 오가는 삶이 좋다. 다시 경영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답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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