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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비싸지만 괜찮아”..'소확행'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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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소비트렌드 '소확행'이 뜬다

파이낸셜뉴스

삼성전자의 냉장고 광고는 요리를 통해 장인과 사위가 어색함을 풀어내는 모습을 담고 있다. 냉장고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위한 방법으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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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장모가 외출을 나선 어느 날. 사위가 거실에서 홀로 바둑을 두는 장인 뒤에서 어색하게 앉아 있다. 괜스레 주방을 둘러보던 사위는 냉장고가 일러주는 대로 국수를 말아낸다. 장인이 국수를 맛보더니 웃으며 말한다. “자네, 좀 하는데?” 장인과 사위 사이의 어색함이 눈 녹듯 사라진다.

삼성전자의 고급형 냉장고 ‘셰프컬렉션 패밀리허브’ 광고다. 광고는 사위와 장인 간 어색함이 행복한 대화로 이어지는 매개체로 인공지능(AI) 대화형 냉장고를 부각시킨다. 소비자는 일반 냉장고 보다는 비싸지만 ‘셰프컬렉션 패밀리허브’를 들이면 우리집도 광고처럼 행복한 대화가 이뤄질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작지만 확실한 행복, 살짝 비싸지만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소비 '소확행(所確幸)'이 2018년 마케팅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소확행이 내년 소비 트렌드를 주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소확행은 1986년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필집에서 처음 언급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의미다. 이 개념은 우리나라에서 거창한 목표나 성취감보단 일상 속 행복을 찾으려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주목받고 있다.

■대기업들, 소확행 마케팅 열공 중
이에 맞춰 최근 대기업들은 잇따라 소확행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자정 가까운 시각, 한 남성이 긴박하게 운전대를 잡는다. 그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분식집. 뜨거운 만두 한봉지를 사 집으로 돌아오자 임신한 아내가 행복하게 웃는다. 식지 않은 만두를 먹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성도 행복하게 웃는다.

한 자동차 대기업 광고 내용인데, 광고는 과거처럼 차량 안전성, 디자인을 강조하지 않는다. 임신한 아내를 위해 운전하는 남편을 비춘다. 그 차가 있으면 아내를 행복하게 해 줄 한밤 야식을 사올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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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보레의 자동차 광고는 늦은 시각 임신한 아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사오는 남편의 시각으로 그려진다. 영상은 자동차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즉 소확행에 녹아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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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시형 명품 소비 보다 행복을 찾는 소비 늘어
일상 속 행복을 찾는 소비패턴이 늘면서 유통가 전략도 바뀌고 있다. 과시소비의 대표사례였던 명품 대신 식품관에 힘을 싣기 시작한 것.

30대 직장인 A씨는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도 유기농 식품을 선호한다. 쇼핑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원정’도 마다하지 않는다. B씨는 “명품처럼 큰 비용을 들이지 않더라도 좋은 식재료로 요리하거나 쇼핑 그 자체를 즐기는 게 내 소확행”이라고 말했다.

2년 전 문을 연 판교 현대백화점 식품관에 입점한 식료품업체 ‘이탈리’에선 1000여종에 이르는 이탈리아 식료품을 구입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한 현지음식 역시 주문이 가능하다. 별도로 갖춰진 매장에서 해외 프리미엄 식재료를 구입하고, 유명 음식점에서 식사를 즐기는 이도 적지 않다. 그로서리(식료품점)와 레스토랑(식당)을 합친 형태 ‘그로서란트’다. 이 점포는 매일 평균 1만명이 찾을 뿐 아니라 올해 총 78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렇듯 백화점 식품관은 명품관에 버금가는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2015년 식품군 매출이 명품 대비 80%였지만 올해 상반기 95%까지 올라섰다. 말 그대로 식품이 명품 턱 밑까지 추격해온 셈이다.

이런 인기에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 AK플라자 등 유통업체들은 프리미엄 식품관을 앞다퉈 열었다. 고급스럽고 이국적인 인테리어를 통해 쇼핑 그 자체에 대한 만족도를 높였다는 평가다.

유진투자증권 김지효 연구원은 “잘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대에 백화점이 더 좋은 먹거리를 잘 갖춰 놓으면 그 자체로 집객 효과를 높일 수 있다”면서 “백화점 업체들의 지난 7년 간 품목별 매출을 살펴보면 유일하게 식품군만이 연평균 6.2%의 견조한 성장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취향을 자극하는 제품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도 한다. 일례로 카카오 프렌즈로 디자인한 카카오 미니나 네이버의 라인 프렌즈 등 인공지능 스피커가 많은 관심을 받을 바 있따. 카카오 미니는 출시 9분 만에 1만5000대가 동났고 라인 프렌즈는 1, 2차 판매에서 모두 매진됐다.

A씨는 “조금 비싸더라도 내 구매력으로 가능한 수준에서 품질이 더 좋거나 취향에 맞는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며 “품질이 좋거나 취향을 저격하는 제품에 지갑을 여는 걸 아까워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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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청년·대학생 금융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은 한달 157만원 벌고 89만원을 쓴다. 대학생은 이보다 더 심각해 50만원을 벌어 102만원을 쓴다. 생활이 빠듯해지면서 젊은층이 거창한 목표 대신 작지만 당장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소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소확행' 소비다. (자료= 금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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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팍팍한 청년들, ‘소소한 행복소비’에 주목
소확행 현상을 주도하는 세대는 젊은 층이다. 저렴하진 않지만 품질이 좋거나 취향에 맞는 제품을 구입해 행복을 느끼려는 것. 당장 생활이 빠듯해 내 집 마련, 결혼 등은커녕 저축도 엄두 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지난달 6일 금융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회초년생 한달 평균수입은 157만원, 지출은 89만원이다.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은 1303만원이다.

사회초년생 B씨는 “월세, 식비 등을 제외하면 30만원 남짓 남는데, 10년 저축해도 아파트 한 채 마련 못한다”며 “차라리 좀 더 돈을 들여 작은 행복을 줄 수 있는 소비를 하는 게 내게 주는 선물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2014년 LG경제연구원이 말한 ‘작은 사치’와 유사하다. 당시 연구원은 “경제적 제약으로 과거처럼 큰 소비에 행복감을 느끼기 어려워진 요즘, 작은 사치에 기반한 소비가 늘 걸로 보인다”며 “사치스런 느낌이 들지만 비싸지 않아 소비자가 감당할 만한 가격 수준의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최근 ‘2018 트렌드코리아’를 출간하며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의 문제로, 잘 먹고 잘 자고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등 일상 속 작은 행복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면서도 “더 많은 소비와 더 많은 물질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소확행을 활용하는 상업주의적 합리화는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smw@fnnews.com 신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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