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본섬과 연결된 섬
일출·일몰 모두 볼 수 있어
주민 200여 명 작은 섬에 영화관까지
세밑엔 바다가 끌린다. 한 해 동안 쌓인 괴로움을 던져버리고 달려가고픈 바다. 요즘 라디오에서 매일 울려퍼지는 푸른하늘의 ‘겨울바다’가 더 부추긴다. KTX가 강릉까지 연결돼 동해로 가기가 좋아졌지만 서쪽으로 차를 몰았다. 일몰과 일출을 모두 볼 수 있는 섬 인천 강화군 동검도가 목적지다.
동검도는 많은 매력을 품고 있지만 가성비 면에서 특히 경쟁력이 있다. 일단 뜨는 해 맞으러 동해로, 지는 해 보내러 서해로 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까지 일몰·일출을 한 자리서 볼 수 있는 곳으로는 서울에서 약 120㎞ 거리인 충남 당진 왜목마을이 유명했다. 그러나 동검도는 훨씬 가깝다. 서울에서 53㎞. 고속도로 통행료도 내지 않고 1시간만에 갈 수 있는 데다 배를 탈 필요도 없으니 시간이나 비용 면에서 더이상 저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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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본섬에서 바라본 동검도. 간조 때여서 물 빠진 바다에 갯벌이 훤히 드러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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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검도는 아담하다. 면적이 1.61㎢로 여의도(2.9㎢)보다 작다. 섬 가운데 산(125m)이 봉긋 솟아 있어 주민 대부분이 해안가에 터 잡고 산다. 과거 중국에서 서울을 찾아온 중국 사신이나 상인을 검문하던 섬이었다. 석모도 서쪽에 서검도, 강화도 본 섬 아래에 동검도가 있다. 지금은 120가구 230명이 사는데 슈퍼는 2개 뿐이고 병원이나 약국은 없다. 그럼에도 큰 불편이 없는 건 1985년에 놓은 제방도로 덕이다. 100m 길이의 제방도로가 강화 길상면 선두리와 연결돼 있어 강화 본섬의 모든 인프라를 다 누릴 수 있다. 현재는 생태 복원 차원에서 제방도로를 대신할 연륙교 공사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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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검도에 들어오자마자 북동쪽에서 마주한 작은 마을. 눈 쌓인 돌담길을 연세 지긋한 어른이 조심스레 걷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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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동쪽 DRFA365예술극장. 하와이안 코나커피를 파는 카페를 겸하는데 영화를 관람하면 커피가 공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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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6일 차 두 대가 간신히 교차할 수 있는 도로를 건너 섬으로 들어갔다. 전날 내린 눈으로 도로가 미끄러웠다. 먼저 찾은 곳은 섬 북동쪽에 자리한 DRFA365예술극장이었다. 고작 230명이 사는 섬에 극장이라니. 게다가 1년 365일 예술영화만 상영하는 희귀한 극장이다. 오전 11시에 예약한 영화는 ‘오케스트라의 소녀’였다. 35석 규모의 극장에는 손님이 7명 뿐이었다. 영화 시작 전 극장 대표 유상욱(53) 감독이 영화에 대해 설명했다.
“미국 대공황의 암운이 남아있던 1930년대 영화입니다. 영화 내용도 좋지만 당대의 전설적인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1882~1977)가 직접 출연해서 영화사적으로도 의미가 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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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석 규모의 아담한 극장 내부. 유상욱 감독이 영화에 대해 설명해주고, 이따금 피아노 연주도 들려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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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아름다운 우화를 감상한 관객은 엔딩크레딧이 올라오는 순간 모두 박수를 쳤다. 관객 대부분은 동검도 동쪽바다 전망이 좋은 2층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했다. 신수경(57)씨는 올해만 다섯 번 이 극장을 찾았단다. “서울의 극장에서는 볼 수 없는 예술영화를 볼 수 있는 데다 섬 경치도 무척 아름다워요. 집(서울 송파구)에서 1시간 30분이면 올 수 있어 막히는 출퇴근 시간 피해서 자주 와요.”
왜 동검도였을까. 유 감독은 원래 예술극장을 제주도에 지으려다 서울에서 접근성 좋은 곳으로 선회했다. 2012년 동검도를 발견했고 이듬해 극장을 열었다. 유 감독은 “좋은 영화를 보고 함께 감상한 사람들끼리 영화 이야기 나누기 좋은 공간을 꿈꿨는데 동검도의 아늑한 풍경과 갯벌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며 “관객들이 차를 마시며 진지하게 영화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극장을 나와 섬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만조 때여서 드넓은 뻘이 드러나 있었고 갯가에는 금빛 갈대가 나부끼고 있었다. 단순하면서도 여운 깊은 30년대 흑백영화와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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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길을 드라이브 하다가 만난 풍경. 섬 곳곳에 낡은 배들이 서 있다. 뒤쪽에 보이는 작은 섬은 '동그랑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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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곳곳에 낡은 배들이 서 있다. 해가 덜 비치는 곳에는 눈이 녹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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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동쪽부터 남쪽으로 가는 길에는 듬성듬성 카페와 펜션이 있다. 섬 남부에는 예술가들이 많이 산다. 유명 탤런트의 별장도 있단다. 화가 김가빈씨는 10년 전 은퇴한 남편과 함께 동검도로 터를 옮긴 뒤 공방 겸 게스트하우스 ‘씨앤갤러리’를 운영 중이다. 마침 작업 중이던 김씨를 만났다. 섬 생활이 불편하지 않은지 물었더니 “조용하고 깨끗해서 작업하기엔 최적의 환경”이라고 말했다. 따뜻한 햇살 비치는 작업실 차창엔 드넓은 갯벌과 멀리 영종대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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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가빈의 작업실 겸 게스트하우스인 씨앤갤러리 객실에는 미술 작품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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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잘 드는 창가에서 작업 중인 화가 김가빈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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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검도는 순환도로가 없다. 다음 목적지인 섬 서쪽의 본사랑미술관으로 가기 위해 왔던 길을 되밟았다. 이곳은 죽 전문 외식업체인 본아이에프가 운영하는 미술관으로, 카페와 펜션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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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업체 본아이에프에서 운영하는 본사랑미술관. 낙조가 아름다운 섬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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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근처에서 일몰을 기다리는데 먹구름이 몰려왔다. 비행기 한 대가 영종도 쪽으로 하강하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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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이 있는 섬 서쪽은 바다 건너 장봉도 쪽으로 해가 떨어지는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났다. 자리를 잡고 해가 떨어지길 기다렸다. 한데 이게 웬일. 진눈깨비가 날리기 시작하더니 사방이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동검도의 하이라이트인 일몰과 일출 중 절반을 포기하고 섬밖으로 나갔다.
섬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선두리 어시장을 찾아 뜨끈한 꽃게탕으로 허망한 마음이나 달래려 했다. 식당을 찾아 배회하는데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조금씩 갰다. 그러더니 어시장 뒤쪽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다시 섬으로 가야하나 싶었는데 삽시간에 해가 기울었다. 너무 늦었다. 그 자리에서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영종도 인천공항으로 하강하는 비행기, 군무를 추는 기러기 떼가 붉은 하늘을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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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리 어시장에서 마주친 일몰. 기러기 떼가 붉은 하늘을 가르며 날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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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마저 실패할 수 없었다. 일출 포인트인 동검도선착장에서 가까운 펜션에서 묵었다. 12월7일 오전 5시40분 기상해 6시30분부터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편의점 빵을 먹으며 해를 기다렸다. 느낌이 이상하다. 여명이 밝아올 시간인데 한치 앞도 안보인다. 해가 떠오른다는 세어도 쪽을 응시했지만 보이는 건 옅은 눈발 뿐이었다. 7시, 7시30분, 8시. 해는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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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한 일출을 기다렸지만 9시가 돼서야 해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갯벌에는 겨울 철새가 먹이를 조아먹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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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모자처럼 흰눈을 덮어 쓴 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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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해안에는 갈대가 지천이다. 햇볕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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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가 넘어서야 안개가 조금씩 걷혔다. 갯벌 곳곳에 깊은 물골이 드러났고, 희끄무리한 물체들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새들이다. 기러기와 두루미 같은 흔한 녀석들도 있었지만 부리가 활처럼 휜 도요새도 보였다. 끼룩끼룩, 끼익. 물 빠진 뻘에는 바람소리와 새 우는 소리만 울렸다. 무채색의 미학. 눈부시게 쨍한 일몰과 일출보다 깊고 진한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
◇여행정보=서울시청~동검도는 53㎞,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걸린다. 섬 안 도로가 좁고 포장 상태가 좋지 않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예술극장은 홈페이지(drfa.co.kr)에서 상영 일정을 확인한 뒤 예약을 해야 한다. 관람료 1만원을 내면 커피 한 잔을 무료로 준다. 식사 패키지는 곤드레밥 1만9000원, 함박스테이크 2만2000원. 070-7784-7557. 본사랑미술관은 수요일에 쉰다. 032-937-573. 섬 안에 펜션이 많지만 주중에는 손님을 안 받는 곳도 있다. 4인 가족 기준 평일 7만~10만원 선이다. 섬 안에는 식당이 마땅치 않다. 강화도 본섬으로 건너가면 꽃게탕이나 갯벌장어를 파는 집이 많다.
동검도(인천)=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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