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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심진용 기자, 이스라엘을 가다] (3)아랍계 “차별 더 심해져”…유대계 “전쟁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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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대 청년들의 고민

시민권 가진 아랍 학생들, 유대인과 힘겨운 경쟁 감내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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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예루살렘 감람산 끝자락에 있는 국립대인 히브리대학교에서 만난 나임(20)은 이스라엘 북쪽 도시 하이파 출신이다. 아랍계지만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투표를 할 수 있고, 입대도 가능하다. 나임은 ‘인티파다’(반이스라엘 저항운동)를 말하지 않는다. “내일 당장 팔레스타인 국가가 생기면 들어가겠냐고? 아니 전혀 그럴 생각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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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전공하는 유세프(23)도 마찬가지다. “점령당한 사람들이 저항하는 건 당연한 권리”라고 하지만 대규모 충돌이 벌어지는 건 걱정스럽다. 이스라엘 북부에서 올리브 농장을 경영하는 아버지가 일궈온 기반이 무너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삶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살 곳은 결국 이스라엘이다. 생물학자가 되고 싶다는 나임이 꿈을 이루려면 이스라엘에서 살아야 한다. “팔레스타인은 돈도 없고 연구 기반도 없다. 정치는 ‘민주주의를 가장한 독재’에 가깝다. 그런 곳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아랍계가 이스라엘에서 주류인 유대인과 경쟁하기는 쉽지 않다. 자피르(24)는 아버지가 큰 식품공장을 운영해 또래 유대인들보다 돈이 많다. 공부도 더 잘한다.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2등 시민’이다. 자피르는 3년 전 텔아비브 클럽에 놀러갔다가 쫓겨났다. 아랍계라는 이유였다. 항의하다 경찰서까지 갔다 왔다. 아버지는 울며 전화한 그에게 “참아라. 네가 겪어야 할 일들이다. 이해하고 넘어가라. 나도 매일 견디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2학년 여학생 하닌(21)은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일자리를 찾을 계획이다. 학부 졸업만으론 취직이 쉽지 않다고 했다. 예루살렘에서 나고 자란 하닌은 “공정한 경쟁은 절대 없다. 여성인 데다 히잡을 쓰고 있고 아랍인이다. 이 모든 것이 차별을 일으킨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 이후 차별적 분위기가 더 강해진 것 같다고 했다.

거칠게 분류하면,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아랍계가 가장 낫고, 그다음이 ‘블루ID’라는 거주권을 가진 아랍계다. 서안지역이나 가자지구에 사는 아랍인은 이스라엘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다. 모두가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입장과 생각의 차이는 크다.

자피르는 부자 아랍인들이 더 많아져야 유대인들 앞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안지역과 가자지구의 ‘동포’들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그는 팔레스타인 독립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피르는 “아랍인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팔레스타인 임시 수도인) 라말라 같은 곳에 투자도 많이 하고 경제 기반도 만들어야 한다. 그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에서 아랍계 인구는 180만명 정도. 전체 20% 수준이다. 서안지역과 가자지구에 사는 450만명은 제외한 수치다. 히브리대 학생 구성도 비슷하다. 유대인이 전체의 60~70%를 차지한다.

아랍은 아랍 학생끼리, 유대인은 유대인 학생끼리 어울린다. 서로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다. 싸움만 날 뿐이다. 트럼프 선언 전날인 지난 5일 캠퍼스에서 유대인과 아랍계 학생 수십명이 각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며 ‘맞불 시위’를 벌였다. 몇 m 거리로 마주 보며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를 외쳤다.

이스라엘 주권과 영토에 대해 유대인 학생들 입장은 단호했다.

작곡가를 꿈꾸는 음대 학생 나베(20)는 “우리에겐 이스라엘 외에 갈 곳이 없다”며 “트럼프는 모두가 아는 사실을 한번 더 강조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나베는 ‘평화주의자’로 분류된다는 게 한인 학생의 설명이었다. 나베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이곳에 살아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역사적 정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아랍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먼저 공격한 것은 늘 아랍 테러리스트들”이라고 했다.

나베는 전쟁이 두렵다. 그의 오빠는 2년 전 제대했다. 가자지구의 격렬한 전투 상황에 투입되기도 했다. “오빠는 ‘아랍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렵다’고 했다.” 트럼프 선언이 종교적 갈등으로 번질까 걱정이다. “종교적으로 방향을 트는 순간 폭력이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는 요나(23)의 말은 학생보다는 군인에 가까웠다. 그는 지난 8월 공군을 제대했다. “2000년 전부터 우리는 이곳에 있었다. 현실적으로 1967년 이후 국경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피흘려 얻은 땅인 골란과 예루살렘을 돌려달라고 하지 말라. 그것을 인정해야 대화도 시작된다. 그래야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그는 “이스라엘은 대단히 포용적인 나라”라고 말했다. 학생회관 커피숍에 앉은 그는 주위를 둘러보라며 “이곳 대학에도 아랍 사람들이 와서 교육을 받고 있지 않나”라고 했다.

아랍의 분노와 저항이 불안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요나는 “이스라엘 군사력은 강력하다. 적들에 대항할 준비를 갖췄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이 개발한 대공미사일 ‘아이언돔’을 시작으로 공군의 각종 최신 전투기를 나열했다. 요나는 ‘힘 가진 자가 정의’라는 논리가 아니냐는 물음에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가진 힘을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힘 있는 국가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나의 꿈은 정치인이다. 리쿠드당에 입당해 크네세트(의회) 의원이 되고 싶고, “이스라엘을 더 안전하고 강력한 나라로 만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같은 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예루살렘 | 글·사진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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