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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연합시론] 선물·경조사비 일부 조정, 법 취지 훼손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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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상 허용되는 선물 상한액이 농·축·수산물에 한해 5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높아지고, 현금으로 내는 경조사비 상한은 10만 원에서 5만 원으로 낮아진다. 국민권익위원회는 11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청탁금지법이 허용하는 '음식물·경조사비·선물의 상한액', 이른바 '3·5·10'(식사 3만 원·선물 5만 원·경조사 10만 원) 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10만 원까지 선물할 수 있는 품목에는, 농·축·수산물 외에 원료·재료의 50% 이상을 농·축·수산물로 쓴 가공품도 포함된다. 그 밖의 선물과 식사비 상한은 종전처럼 각 5만 원, 3만 원을 유지한다. 현금 경조사비는 5만 원까지지만 화환은 10만 원짜리까지 보낼 수 있다. 현금 경조사비 5만 원에 5만 원짜리 화환을 함께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정부는 권익위 의결 내용이 반영된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와 국무회의의 의결 등을 거쳐 적용할 예정이다. 아직 정확한 시점을 말하긴 이르지만, 내년 설 전에 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권익위는 지난달 27일에도 전원위를 열어 '3·5·10' 규정 개정을 의결하려고 했으나 '위원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의 정족수를 맞추지 못해 무산됐다.

현금으로 내는 경조사비 상한액을 현행보다 절반으로 줄이기로 한 것은 긍정적이다. 청탁금지법의 제정 취지에 맞고 국민 정서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청탁금지법은 공무원·교직원·언론사 임직원 등을 대상으로 하는 법안이다. 하지만 이 법에서 경조사비 상한액을 10만 원으로 정함에 따라 10만 원이 경조사비의 표준인 것처럼 여겨져 서민 부담을 가중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대부분 현금으로 내는 경조사비 상한액이 5만 원으로 낮춰짐에 따라 서민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반면 선물 상한액을 농·축·수산물에 한해 10만 원으로 높이기로 한 데 대해선 우려의 시각도 만만치 않다. 농·축·수산물 선물 상한액 조정은 이 법의 시행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 농민과 축산인, 어민 등의 입장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농·축·수산물이 설, 추석 등 명절 선물로 굳어진 상태에서 청탁금지법이 선물의 상한액을 5만 원으로 정함에 따라 타격을 입게 된 농민, 축산업자, 어민을 중심으로 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비등했다. 이번 권익위 전원위 의결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전남지역 국회의원과 전남도지사를 지낸 이낙연 국무총리도 '3·5·10 규정' 개정 의지를 수차례 피력한 바 있다. 하지만 특정 업종에만 예외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청탁금지법의 근본 취지를 흔들 위험요소도 안고 있다. 당장 식사비 3만 원을 유지하기로 한 것을 놓고, 외식업계에서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면 답변이 궁색해질 수 있다.

지난해 9월 28일 시행된 청탁금지법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청탁과 과도한 접대문화를 개선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따라서 청탁금지법의 근본 틀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마땅하다. 이 법과 시행령을 현실에 맞도록 더 정교하게 보완하는 것은 좋지만, 과도한 수정으로 법 제정 취지까지 후퇴시키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청탁금지법의 주창자라 할 수 있는 김영란 서강대 석좌교수가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3·5·10 같은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얼마가 되든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게 맞다"고 지적한 의미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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