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교육 모델로 뜨는 '협력 수업'
무학중 과학수업, 조별 과제 탐구
"함께 토론하면 저절로 정답 나와"
체험형 학습, 하루 지나도 75% 기억
저커버그 나온 고교 '원탁 수업'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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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 능력이 뜬다
OECD는 2015년부터 세계 여러 나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협업적 문제해결력’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미래사회에선 혼자 일을 하는 것보다 팀을 이뤄 시너지를 내는 게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죠. 최근 선진국 학교에선 협력 수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사의 일방적 수업으로 이뤄진 기존의 교육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죠. 이번 주 ‘열려라 공부’에선 협력 수업의 구체적인 방법과 효과를 면밀히 살펴봤습니다.
」과학수업 시간에 조별로 모둠을 지어 토론식 수업을 하고 있는 서울 무학중 학생들과 손미현(왼쪽에서 두 번째) 교사. 강정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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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후 서울 성동구 무학중학교 2학년 2반 과학수업 시간. 7조의 김창훈(14)군이 1조에서 낸 문제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같은 조의 김민규(14)군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 지레 위 물체의 무게와 이동거리를 곱해서 일의 양을 계산하는 문제야.” 두 친구의 말을 듣고 있던 조장 김지우(14)군이 입을 열었다. “그럼 너희 둘이 일의 양을 계산해줘. 나는 지레를 드는 데 힘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따져서 지레가 얼마나 움직였는지 알아볼게.”
이 학교 손미현 교사의 과학수업 시간은 늘 시끌벅적하다. 20여 명의 학생은 7개 조로 나뉘어 모둠 수업을 하는데 교사보다 훨씬 더 말을 많이 한다. 45분 수업 중 손 교사가 말하는 시간은 대략 10~15분. 나머지는 학생들끼리 토론하고 탐구하는 시간이다. 이날 수업은 한 주 뒤의 기말고사에 대비해 학생들끼리 학습 내용을 복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각 조는 큰 전지에 기말고사에 해당하는 범위의 수업 내용을 요약하고 이를 점검할 수 있는 문제를 3~4개씩 냈다. 학생들은 조별로 서로 다른 색깔의 사인펜을 들고 7개 조를 돌면서 함께 문제를 풀었다. 개념이 잘못됐거나 문제가 틀린 경우엔 사인펜으로 수정하며 보완해줬다.
2조의 배규호(14)군은 7조가 낸 문제에서 잘못된 점을 고쳐줬다. 도르래를 사용해 물체를 들어 올릴 때 필요한 에너지의 양을 구하는 문제였다. “바른 문제가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더 필요해요. 첫째는 도르래를 들어 올릴 때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려줘야 합니다. 둘째는 도르래의 무게를 계산에 포함할지 말지를 정해줘야 하죠.”
중력의 법칙을 이용해 학생들이 설계한 놀이동산의 놀이기구. 윤석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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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마다 범인이 입은 외투의 색을 다르게 증언했는데, 이런 내용을 토대로 실제 옷 색깔은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었다. 손 교사는 “빛의 합성과 반사의 원리를 적용해야 풀 수 있는 문제”라며 “혼자선 어려워도 함께 토론하다 보면 저절로 정답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빛의 3원색을 이용해 범인이 입고 있던 옷의 색깔을 맞추는 문제. 과학수업 시간에 학생들은 토론을 통해 임 문제를 함께 풀었다. 윤석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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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후 24시간 뒤 기억에 남는 효과 |
이처럼 함께 하는 공부, 이른바 '협력 수업'이 미래의 교육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읽기·수학·과학 지식을 주로 보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학업성취도 평가에서도 ‘협력적 문제해결력’을 2015년부터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주호(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서로 더욱 많이 의존하게 되고 연결성도 강해지기 때문에 여럿이 팀을 이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제임스 머피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케네디와 클린턴·오바마 같은 리더들은 학창시절부터 활발한 토론을 하며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훈련을 해왔다”며 “대학·기업 등 어느 조직이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디베이트 가이드』).
협력 수업은 학습효과도 높다. 미국 행동과학연구소의 학습 피라미드 모형에 따르면 학습 후 24시간 뒤 기억에 남는 비율이 일방적 수업에선 5%에 불과하다. 하지만 참여형 학습에선 기억에 남는 비율이 훨씬 높아 토론 수업은 50%, 체험·실습 수업은 75%에 이른다. 지은림 경희대 연구처장(교육학)은 “협력 수업에선 토론과 체험 등 다양한 학습법이 사용되기 때문에 학습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고 말했다.
필립스 액시터 아카데미는 고교의 하버드로 불리는 명문 학교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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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일방적으로 강의를 듣는 게 아니라 팀별 과제 발표와 토론을 통해 스스로 학습한다. 수업에선 협력이 제일 중시된다. 공부는 ‘남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나누는 것’이라고 이 학교에선 강조한다. 교사들은 원활한 토론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할 뿐이다.
이 학교 입학사정관을 지낸 최유진 미국 노스파크대 교수는 “액시터에선 서로 협력하고 존중하는 공부 방식을 통해 성실성·책임감·배려심 같은 인성을 자연스럽게 체득한다”고 말했다. 학생평가 때도 시험점수만이 아니라 토론 준비와 태도,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필립스 액시터 아카데미의 하크니스 테이블에서 토론을 하고 있는 학생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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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구글 본사에 취업한 이준영 구글 엔지니어링 매니저 역시 “아무리 똑똑해도 팀워크에 문제가 있으면 채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구글은 전 세계에서 입사지원자가 3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중 0.2%만 채용되는데 이때 핵심 선발 기준이 ‘협업능력’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다보스포럼은 미래 핵심역량 5가지를 꼽았는데 그중 하나가 ‘협업능력’이었다. 나머지는 문제해결 능력, 비판적 사고력, 창의력, 사람관리 역량 등이었다.
국내 기업 인사 담당자들도 협업능력을 중시하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해 12월 500대 기업 인사 담당자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채용 때 가장 중요시하는 요소로 도덕성·인성(23.5%)이 꼽혔다. 두 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협업능력과 문제해결력(각각 13.6%)이었다. 이어 인내력(13.3%)과 의사소통능력(10.4%) 등이 뒤를 이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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