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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가업승계 대신 PEF行]②`子·稅·業` 걱정…명분 버리고 실리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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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황불안 타개책으로 외부 조력 필요

자식으로는 불안‥마땅치않은 후계

지분상속땐 稅부담‥일단 현찰확보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중견·중소기업 오너에게 회사는 자신의 분신(分身)과도 같다. 젊은 시절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의 방식으로 일군 회사이기 때문이다. 회사에 대한 애정이 커 얼마 전까지는 당연히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일이 당연시됐다. 특히 냉혹한 구조조정의 대명사인 사모투자펀드(PEF)에 매각하기란 생각하기 어려운 카드였다. 그런데 최근 하나둘씩 PEF에 회사를 넘기는 오너가 늘어나면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후계구도 마땅하지 않고 상속세 부담도 커

중견기업 창업주나 오너들이 과거와 달리 자식에게 가업을 물려줘야 한다는 명분에 집착하는 대신 실리를 따지기 시작했다는 게 투자은행(IB)업계 평가다. 사실 창업주나 오너들은 회사 성장에 남다른 편이다. 특히 대물림을 앞두고 회사 실적이 정체한 기업의 경우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믿고 맡길 후계자가 없다고 판단되면 회사 외부의 제3의 대안을 찾는 경우가 늘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자식의 경영능력이 부족하거나 경영승계에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대형 회계법인 한 임원은 “오너 2세나 3세들은 과거와 달리 기업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강하지 않다”면서 “경영자인 아버지를 보면서 복잡하고 머리 아픈 일 대신 다른 삶을 꿈꾸는 일이 많다. 자식이 전문직에 종사할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김준일 락앤락 회장도 회사 지분을 매각한 뒤 가진 인터뷰에서 “요즘처럼 경쟁이 심한 상황에서는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성공률이 가장 낮다”면서 “우리 애들은 아직 세상 경험이 많지 않으니 그게 큰 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업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상속세 부담도 큰 편이다. 현행 세법에 따르면 과세표준액 30억원을 넘는 상장 주식의 경우 상속세율이 50%에 달한다. 의결권이 있는 주식이라면 30%의 가산세가 붙는다. 상속세로만 지분 매매가의 65%를 내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차라리 PEF에 매각해 양도차익의 20%만 부담한 뒤 현금을 챙겨놓고 다른 기회를 엿보는 게 유리하다.

◇투자처 발굴 시급한 PEF‥경쟁 치열해 지면서 몸값 올려

마침 M&A시장 큰 손으로 부상한 PEF 역할도 한 몫하고 있다. 지난해말 기준 PEF의 출자 약정액은 62조2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투자자에게 약정만 받아놓고서 아직 집행하지 못한 금액은 18조6000억원에 달했다. PEF로서는 투자처 발굴이 시급한 처지다. 투자를 집행하지 않으면 운용보수를 받지 못하고 결국 토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경쟁력을 갖춘 중견·중소기업은 PEF의 좋은 사냥감이다. 기업의 인수 뒤 경쟁력을 높여 되팔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괜찮은 기업을 사려는 PEF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연스레 기업 몸값이 올라가는 상황이 됐다. 여기에 현금이 풍부한 PEF가 기업의 몸값을 후하게 쳐준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매각 문의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PEF에 대한 개선된 사회적 인식도 오너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한때 PEF가 기업을 인수하면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을 쥐어 짜낸다는 인식이 강했다. 최근 들어서는 PEF가 인력 해고를 통한 수익성 확대보다는 선진 경영기법을 도입하거나 경영 효율화 작업을 통해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부정적 인식도 많이 감소했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과감한 인적 구조조정은 한국적 상황에서는 아예 가능하지 않은 수단”이라면서 “비만한 조직의 기름을 빼고 비용이 새는 부분을 찾는 경영기법을 통해 인수기업에 활력을 주는 일이 늘다 보니 인식도 과거보다는 좋아졌다”고 말했다.

IB업계에서는 창업주나 기업 오너의 지분이 PEF로 이동하는 사례가 앞으로 더 늘 것으로 보고 자문이나 투자 기회가 늘 것으로 보고 관련 상황을 살피는 데 분주하다. 김종민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중견이나 중소기업을 활발하게 사고 파는 건 PEF 본연의 역할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서 “PEF의 덩치가 커지면서 더 많은 거래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용어설명

사모펀드(PEF·Private Equity Fund)= 특정기업 주식을 대량 인수해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의 펀드. PEF는 주로 회사 경영권을 인수한 뒤 기업 구조를 개선해 수익을 올리는 바이아웃(Buy Out)에 주로 투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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