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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집중취재] 하루 3명 꼴 사망…잇단 화물차 사고,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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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보다 치사율 2배 이상 높아 … 도로 위 ‘시한폭탄’ / 대부분 대형사고 이어져 피해 심각 / 해마다 사망자 1085명…하루 3명 꼴 / '과적' 주원인…"생계 위해선 불가피" / 단속 허술하고 화주는 '모른척' 일쑤 / 다단계 하청 '지입제' 운전자에 불리 / 도착시간 맞추려 과속·졸음운전 빈번 / 차종·거리 비례한 '표준운임제' 필요 / "화주·운송사에도 과적 책임 물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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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5.4명.

사업용 화물차를 포함해 전체 화물차 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지난 5년간 연평균 수치다. 하루 평균 3명 가까이 사망한 셈이다. 화물차 사고 대부분은 대형 사고로 이어져 교통사고 건수 대비 사망자 수를 말하는 ‘치사율’이 높다. 화물차 사고는 대형 교통사고로 연결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최근 창원터널에서 발생한 화물차 폭발사고는 대한민국 화물차 운송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화물 운송 산업의 구조적 문제에 따른 사고 위험을 모든 시민이 안고 있다.

20일 경찰청에 따르면 화물차 교통사고는 2013년 2만7650건, 2014년 2만8250건, 2015년 2만9128건, 지난해 2만6576건이 발생했다. 화물차 사고는 전체 교통사고의 12%에 이를 정도로 전체 교통사고 중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승용차 교통사고의 치사율은 1.43%인 데 비해 화물차는 3.58%로 집계됐다. 승용차보다 사고 발생 때 치사율이 2배 이상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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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흉기’ 과적 화물차… 사고 주원인

화물차 사고의 가장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과적’이다. 창원터널 사고의 경우 당시 5t 트럭 운전자는 법으로 허용된 ‘차량 최대적재량의 110%’(5.5t)를 훌쩍 넘는 7.8t 화물을 실었다.

업계에서는 이런 과적이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다. 15년째 5t 화물차량을 운전 중인 박모(57)씨는 “그 정도면 상당히 양호한 수준”이라며 “화물을 기준보다 더 많이 싣고 다니는 과적 운행 운전자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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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 운전자들은 “생계를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과적을 감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화물운송시장에서는 화물 운송을 의뢰하는 화주가 공개입찰 방식을 통해 운임을 결정한다. 운송사는 물량을 따기 위해 운송료를 낮춰 입찰에 참여한다. 화주는 비용절감을 위해 한 번에 최대한 많은 짐을 싣고 가길 요구한다. 과적해도 모른 척 눈 감기도 한다. 운전자 역시 운송에 드는 비용 등을 고려하면 과적 운행을 거부하기 어렵다. 14t 트럭을 운전하는 김모(47)씨는 “지금 운임비가 10년 전보다 못한 상황”이라며 “다른 화물차와 경쟁하다 보니 낮은 운임에도 운전할 수밖에 없고, 차량 할부금과 기름값 등을 따져보면 운전자가 자발적으로 위험한 운송업무를 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단속은 허술하다. 고속도로 나들목마다 5t 이상 화물차의 과적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전용 통로가 있지만, 오차범위가 넓어 실제 단속률은 낮다. 화물차 바퀴별로 가해지는 하중만으로 과적을 판단하기 때문에 보조바퀴를 내리는 식으로 하중을 분산하는 ‘꼼수’를 부리면 과적 차량도 통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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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단계 하청구조 ‘지입제’ 과적 부추겨… 장시간·과속·심야 운전도 사고 불러

‘지입제’도 과적 운행을 부르는 원인 중 하나다. 지입제는 화물차운송사업면허를 가진 운수회사에 개인소유 차량을 등록해 일감을 받아 처리하고 보수를 받는 것이다. 화주사, 운송사, 주선사, 알선업체 등을 거쳐서 화물 운수근로자에 이르는 구조이다. 본인 이름으로 차량을 등록하지 못해 운전자들은 법적으로 불리한 지위에 놓여 있다. 이런 탓에 운임이 낮게 설정되고, 다단계 하청 구조상 여기저기에서 떼어간다.

한 화물차 운전자는 “25t이나 트레일러 운전자는 운송을 위해 번호판을 3500만원을 주고 샀는데 6년 뒤에는 번호판을 돌려줘야 하고, 보증금 방식이 아니라 돈도 돌려받지도 못한다”며 “운전자가 운송사업자와 동등한 지위에서 계약을 논의한다는 것은 꿈 같은 얘기”라고 지적했다.

운임문제는 과적뿐 아니라 장시간 운전, 과속운전으로까지 이어진다. 생계를 위해 더 자주, 더 멀리, 더 많이 실어날라야 하기 때문이다. 화주들이 정한 시간 안에 도착하기 위해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 2014년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5t 이상 트럭 운전자의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13.6시간이다. 고속도로 위에서 4시간 이상 장시간 주행하는 운전자 역시 전체의 22.6%로 집계됐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2015년 5t 이상 화물차의 운전행태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고속도로에서 하루 평균 8시간 운전하는 화물차 운전자 비율이 36.6%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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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 교통사고 모습. 전북경찰청 제공


국토교통부는 지난 1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화물차 운전자가 4시간 운전 시 30분 휴식을 보장하도록 했다. 이를 위반하는 경우 최대 180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사고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화물차 운전자들은 “늦으면 일감이 끊기는 상황에서 휴식 시간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얘기”라고 말했다.

화물차 운전자들의 심야운행도 지속하고 있다. 한 25t 카고트럭 운전기사는 “심야할증으로 가게 되면 도로비가 50% 저렴하다”며 “만 몇천원 하는 도로비를 아끼려고 야간운행을 하다 보면 졸음운전으로 이어지기 일쑤”라고 말했다. 지난해 화물차 사고의 25%는 졸음운전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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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한 화물차 관리 체계… 업계·전문가 “운임·과적 단속 현실화 필요”

화물차 관리 체계가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차량과 위험물에 대한 관리 주체와 분류는 제각각이다. 인화·가연·발화성 물질 등을 일컫는 ‘위험물’은 정부 9개 부처에서 13개의 법령이 따로 규제하고 있다. 인화성 물질은 소방청에서, 고압가스류는 산업부, 유해화학물질은 환경부에서 관여하는 식이다. 운행과 관련한 면허 취득은 경찰청에서, 물류정책 차원에서는 국토교통부에서 관리한다. 같은 물질이어도 주무 부처가 달라 사고가 발생하면 소관 부처 파악부터 해야 해 재빠른 대응이 어렵다.

화물 운송 산업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표준운임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차량의 종류, 운행 거리 등에 비례해 최소한의 운임 기준을 국가가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표준운임제 논의는 2009년 이명박정부 때부터 법제화 논의가 있었으나 현재까지 도입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이 표준운임제 도입 등을 담은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이준서 민주노총 화물연대 울산지부장은 “화물차 사고를 단순히 노동자 개인의 일탈로 봐서는 안 된다”며 “운임을 현실화하는 것이 화물노동자의 권리를 넘어 국민의 안전까지 보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과적 단속에 걸려도 과태료가 5만원 정도여서 실효성이 없다”며 “국토교통부와 경찰로 나뉜 단속 권한을 일원화하고 과태료 부과 금액을 높여 화주와 운송사에도 함께 책임을 물어야 과적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통안전공단 전연후 교수는 “이동식 과적 단속을 하는 등 단속을 강화하고 법규위반 사항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단속 인원도 늘려 효과적인 단속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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