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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여성 경력단절은 계층 격차 문제”…경력단절 악순환을 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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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육아를 도와줄 조부모가 있거나 ‘이모님’을 구할 형편이 되는가? 출산 후 복직이 보장되는 직장에 다니는가? 배우자가 아내의 직업활동을 존중하고 고정된 성역할 규범에서 자유로운가?’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지 않는 여성은 출산 후 필연적으로 경력단절을 겪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경력단절 이후 많은 여성이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에 진입하고, 일터와 집에서 끊임 없이 일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20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7 여성과 빅데이터 심포지엄’에서 김도훈 아르스 프락시아 대표는 “일가정양립을 하기 위해서는 양육을 함께 해주는 보조양육자와 가족친화적인 직장 문화, 고정된 성역할에서 자유로운 남편 등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며 “경력단절을 유발하는 이런 조건을 완화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가 ‘맘스홀릭’, ‘레몬테라스’, ‘82쿡’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514만6228개의 게시글에 대해 의미망 분석을 한 결과, 임신축하금·아동수당 같은 현금성 지원보다 남편의 육아휴직과 성별역할분담 완화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게 나타났다.

게시글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남편’(1만9985건)으로 남편에 대한 기대감과 실망, 독박육아에 대한 부담을 토로했다. 다음으로는 육아(1만739건), 엄마(9086건), 산후조리원(6585건), 시댁(6277건), 친정(5297건) 등이 언급됐다.

경력단절 여성은 ‘경력단절→나 홀로 육아→저임금 시간제 일자리 진입→일·가사 부담 가중’의 악순환을 밟는 경우가 많았다. 출산·육아 정책의 대상인 19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한 결과, 전업주부가 된 여성들은 아이가 제법 큰 뒤 저임금·저학력 노동시장에 편입됐다. 다시 맞벌이가 됐지만 경력단절을 겪지 않은 부부보다 남편의 가사분담이 덜 해 일과 가족 내 역할을 모두 수행하며 고립감과 자아상실감을 경험했다.

김 대표는 “경력단절은 모든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계층 격차가 반영된 문제”라며 “계층 격차에 따른 차이를 공적 영역에서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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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정양립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선택이 아니라 보조양육자의 존재와 직장 문화, 배우자의 조건을 갖춘 특정 계층에서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인적 자원과 사회적 여건을 갖추지 못한 계층일수록 일가정양립은 불가능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돌봄 지원을 확대하고 돌봄 노동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는 ‘육아의 사회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대표는 “그 어떤 부모도 아이를 키워봤다는 이유로 저임금에 일시적으로 고용되는 돌봄노동자를 원하지 않는다”며 “실효성 있는 정책 서비스를 위해서는 현금성 지원보다는 돌봄노동의 가치에 대한 재정립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가가 베이비시터를 양성해 지원해주기 위해 도입된 아이돌봄 서비스는 처우가 열악한 저임금 일자리로 설계해 공급 부족이 반복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뿌리 깊은 성별이분법과 성별역할부담, 모성성에 대한 통념을 완화하는 것이다. 돌봄 제도가 잘 정착돼 있어도 이 부분의 개선 없이는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아빠 육아휴직 제도의 의무화는 사회 전반에 만연한 젠더 통념을 완화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아빠를 대상으로 한 출산·양육 교육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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