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3 (수)

[나는 역사다]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에서 테러 정객으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홍종우 (1850~1913)

1898년 11월21일, 황국협회를 이끌고 만민공동회를 습격하다

한겨레

위키피디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은 홍종우의 세 얼굴이다. 어느 것이 그의 참모습일까?

① 문명개화를 꿈꾸던 유학생: 19세기 말에 프랑스 유학을 갔다. 심지어 자비를 들였단다. 파리의 박물관에서 일하며 <춘향전>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기도. 우리 문화를 유럽에 소개한 원조. 돌아와서는 일본에 망명해 있던 개화파 인사들과 교유. 프랑스에 관심이 많던 김옥균과 함께 유럽을 다시 찾을 계획을 세운다.

한겨레

일러스트 오금택


② 냉혹한 암살자: 그러나 중국에 도착하자 홍종우는 태도를 바꾸었다. 숨겨둔 권총을 꺼내 김옥균을 쏘아 죽였다. 개화를 둘러싼 생각이 달라 그랬다는 해석도 있지만, 출세가 목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일본에 망명한 갑신정변의 주역들을 불편해하던 조선 왕실. 암살 소식을 크게 반겼다. 김옥균의 핏값으로 홍종우는 관직에 들어선 셈.

③ 왕실을 위해 정치깡패 노릇까지: 처음에는 정부와 사이가 좋던 독립협회, 나중에는 만민공동회를 열어 정부를 압박했다. 홍종우가 황국협회를 이끌고 만민공동회를 습격한 날이 1898년 11월21일.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 시위 참가자 김덕구가 목숨을 잃었다. 유혈사태의 책임은 황국협회에 있었지만 정부가 만민공동회를 진압할 명분을 제공. 관제데모도 홍종우가 원조였달까.

김태권 만화가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