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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부실공사 막게 동영상 찍으라더니…처벌 없는 `엉터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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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 지진 이후 / 부실공사 방지대책 '구멍' ◆

매일경제

포항에서는 내진설계 1등급 아파트도 지진을 버티지 못하고 외벽에 쩍쩍 금이 간 사례가 발견돼 주민들을 당혹하게 했다. 기둥 3개가 충격으로 인해 꺾인 포항 북구 장성동의 한 빌라는 철근 간격이 시공 기준보다 2~3㎝ 더 넓게 듬성듬성 들어간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주었다. 내진설계 유무를 떠나 시공 자체가 날림으로 이뤄진 것이 지진 피해를 더 키웠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포항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건물 대부분에서 악성 날림 공사 흔적이 발견된 만큼 이번 지진을 계기로 부실공사를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부실시공으로 인한 하자 분쟁건수는 아직도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국토교통부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아파트 부실시공으로 인한 하자보수 분쟁을 신고한 건수는 2013년 1953건에서 지난해 3880건으로 3년 새 2배나 늘었다.

문제는 나날이 부실시공에 따른 하자·분쟁이 늘어가는데 이를 감독하고 견제해야 할 정부와 제도적 감시망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2월 부실시공 공사 방지와 경주 지진 이후 건축물 안전 강화 차원에서 △시공과정 동영상 촬영·제출 △시공자와 감리자의 설계도서 시공 여부 확인서명 의무화 △감리세부 기준을 서술형에서 체크 리스트로 변경하는 등 여러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이 중 가장 주목받은 대책은 시공자가 공사 공정에 따라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해서 보관하고, 감리자와 건축주에게 제출하도록 만든 조항이었다. 예전까지는 공사 부분별로 시작 전과 완료 상황 사진만 남기면 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예를 들어 철근을 기준치에 맞게 시공했지만 콘크리트 타설 과정에서 생긴 압력 때문에 철근 간격이 비뚤어졌어도 사진은 타설 전과 타설 후만 남기 때문에 잡아낼 방법이 없었다"며 "공사 전 과정을 감독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하자를 잡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 중간에 발생할 수 있는 하자를 담을 수 없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는 얘기다.

이 조치 이후 대형 건설사들은 현장에서 동영상 촬영을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대성산업은 동영상 촬영부터 관리까지 원스톱으로 진행하는 '동영상 기반 건물시공 및 유지보수 통합관리방법(MVIT)'을 개발해 특허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시행 9개월이 지났지만 이 감독 규정은 사실상 있으나 마나 한 상황이 됐다는 게 건설 현장 목소리다. 동영상 촬영을 '의무화'만 했을 뿐 어겼을 때 처벌규정이 따로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도급 위주로 진행되는 '관행 절차'가 만연한 건설 현장에서 동영상 촬영 규정이 있어도 지키지 않는 사례가 많다는 의미다. 수도권에서 하도급 공사를 담당하는 한 전문건설사 관계자는 "공정 부분마다 카메라를 켜놓고 감시하는 꼴이라 현장 인력들이 꺼린다"며 "안 지켜도 처벌이 없다는데 누가 지키겠냐"고 반문했다.

의무 성격을 지닌 법령이 대부분 처벌규정이 함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황당하다. 소관 부처인 국토부는 매일경제가 해당 사실을 지적할 당시 처벌규정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건축주나 감리자를 제어할 수 있는 조항이 건축법에 있기 때문에 동영상 촬영 조항이 전혀 힘을 못 쓴다고 보긴 어렵다"고 항변하면서도 "별도 처벌규정 신설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포항지진에서 피해가 집중됐던 소규모 빌라 등은 개인이 건축주가 돼 원룸이나 소형 빌라를 시공할 경우 비용을 줄이려고 외부 감독이나 감리도 받지 않고 날림 시공을 하는 사례도 많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주거용 661㎡ 이하, 비주거용 495㎡ 이하 규모 건물은 건축주가 '직영 시공'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건축주가 건설사(건설업 등록업자)를 끼지 않고 공사에 필요한 자재·장비를 직접 동원해 소형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부실시공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지적되는 감리업계의 열악한 경쟁력도 고질적인 병폐다. '주택건설공사 감리자 지정 기준'에는 감리자의 신용평가, 업무수행 실적, 행정 제재, 기술개발, 투자실적, 신규 감리원 배치 등 다양한 평가지표가 있지만 결국 입찰 당락은 가격이 좌우한다. 이런 제도적 허점은 입찰에 참여하는 감리사업자에게 신기술 개발이나 기술인력 확보 노력을 할 이유가 없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가격 경쟁 위주 입·낙찰제도도 부실공사의 잠재 원인 중 하나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공공부문의 공사비 산정 기준인 실적공사비는 제도가 도입된 2004년 이후 10년간 36.5%나 하락했지만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발표하는 공사비지수는 같은 기간 50% 넘게 상승했다.

10년 동안 공사 원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했는데 공사비는 계속해서 하향 조정된 것이다. 게다가 300억원 미만 공사에 적용하는 적격심사제도의 낙찰 하한율은 80%로 2000년 이후 17년 동안 고정돼 있다. 원도급자가 저가로 수주하게 되면 하도급을 담당하고 있는 업체에 그대로 전가되고 결국 비용 부담을 유발해 부실공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손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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