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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인터뷰]<시선집중> 새 주인된 '최고참 유배자' 변창립 아나운서의 첫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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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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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복잡한 얘기로 핑계를 대거나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공영방송 MBC를 지키지 못한 책임은 저희 구성원 모두에게 있음을 통감합니다. 조금 더디더라도 바른 방향으로 다시 달리겠습니다.”

MBC의 간판 라디오프로그램 <시선집중> 방송이 20일 오전 7시30분 다시 시작됐다. 5년 만에 마이크를 잡은 변창립 아나운서(59)의 오프닝멘트에는 공영방송을 다시 세우겠다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세월호 미수습 희생자들의 발인식이 있던 이날 <시선집중>의 첫 출연자는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었다. 유 위원장은 미수습자 가족들과 세월호 수색 상황, 2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구성 등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한 뒤 “언론이 이 사회를 얼마나 제대로 이끌어갈지는 일선에서 일하는 언론인들에게 달렸다”며 “취재하는 동시에 아픈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시선집중>은 아나운서들을 방송에서 빼고 부당전보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신동호 아나운서국장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이다. 신 국장이 앉았던 자리에, 5년간 심의국에 밀려나 있던 변 아나운서가 앉았다. 그간 MBC가 외면했던 세월호 유가족이 처음으로 방송에 출연했다. 이날의 ‘첫 방송’은 김장겸 전 사장 해임 이후 MBC가 정상화되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이 회사에서 부당전보를 당한 ‘최고참 유배자’였다. 변 아나운서는 첫 방송을 마친 이날 오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파업 중에 했던 다짐을 하나하나 이행하면서 긴 시간 우리가 잘못한 부분을 조금씩 갚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1984년 입사한 변 아나운서는 2012년 170일간의 파업이 끝난 뒤 그해 12월 교육발령을 받았다. 심의국 라디오심의부로 전보당한 뒤 5년간 방송을 하지 못했다. 내년 1월1일부터 안식년에 들어가고, 그 이듬해 정년을 맞는 그가 한달 반짜리 시한부 진행자 자리를 수락한 것은 “<시선집중>을 빨리 정상화해야 한다”는 라디오국 동료들의 설득 때문이었다. 결국 그가 진행을 수락하면서 20일부터 정상적으로 방송될 수 있었다.

그는 “좋은 방송을 만들겠다고 파업하고 투쟁했는데, 개인적인 이유로 대의명분을 이길 수 없었다”며 “그동안 MBC 시사프로그램들이 세월호 유가족 등을 철저히 외면해왔는데, ‘좋은 방송을 만들겠다’는 파업 기간의 다짐들을 잊지 않고 앞으로 갚아나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MBC가 완전히 정상화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변 아나운서는 아직도 심의위원 신분이다. 심의국 출입증으로는 생방송 스튜디오에 들어갈 수가 없어 이날은 제작진이 스튜디오 문을 미리 열어놓고 기다렸다고 했다. 김장겸 전 사장, 백종문 전 부사장이 물러났을 뿐 총파업을 야기한 경영진과 간부들은 건재하다. 사장 대행을 맡고 있는 최기화 기획본부장이 전날 <시선집중> 방송을 하지 말고 파업 때처럼 음악방송을 편성하라고 제동을 걸기도 했다고 그는 전했다.

이날 라디오방송은 대부분 정상화돼 기존 진행자들이 방송을 재개했지만, TV는 재정비 시간이 필요하다. <PD수첩>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 쪽은 보직간부들이 물러날 때까지 제작 중단이 이어진다. 보도국 구성원들도 파업은 풀었지만 제작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어 뉴스 파행이 계속되고 있다.

변 아나운서를 포함해 부당전보를 당했던 아나운서들은 “옛 경영진이 내린 부당한 인사명령은 인정할 수 없다”며 15일 업무에 복귀한 이후 아나운서국으로 출근하고 있다. 기자와 PD 등 다른 직군의 부당전보자들도 원래의 소속 부서로 출근하는 ‘출근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책상조차 없어 벽쪽에 임시로 자리를 마련했지만 어느 때보다도 분위기는 활기차다고 했다. 아나운서국은 방송장악의 역사를 정리하고, 오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서로 방송을 모니터하면서 정상화 채비에 한창이다. “모두가 선생님이자 학생인 희한한 학교가 하나 생겼다.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큰소리를 많이 쳤는데 오늘 방송을 엉망으로 했을까 걱정이다”라며 변 아나운서가 활짝 웃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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