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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목멱칼럼]수능 연기보다 중요한 대입제도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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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수능을 하루 앞둔 날 교육부가 긴급회의를 열어 1주일 간 시험날짜를 연기하자 건의하고 이를 청와대와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도 동남아 순방에서 돌아오는 전용기 안에서 지진 발생 사실을 보고받고, 귀국 즉시 긴급회의를 소집해 관련 대책을 논의했다고 한다.

급작스런 수능 연기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논란이 심한 것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발표 초기의 혼선이 빠르게 진정되고 있고, 발 빠른 결정이 더 큰 화를 막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것은 수능을 강행했을 때의 문제가 얼마나 클지 누구보다 현장의 교사들과 전문가들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사실 대학입시를 위한 전국 단위의 시험이 하루 전에 미뤄진 일은 92년에도 있었다. 1992학년도 후기 대학입학 학력고사 때였는데, 시험을 하루 앞둔 1992년 1월 21일, 서울신학대학교에서 보관 중이던 학력고사 문제지의 포장 박스 겉면이 뜯겨져 있는 것을 학교 경비원이 발견하여 경찰에 신고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 조사 결과 문제지가 각 교시별로 1부씩 없어진 것이 확인되었고, 이에 교육부에서는 전국 각 대학에서 보관 중이던 문제지를 긴급 회수하여 파기했다. 물론 1월 22일로 예정되어 있던 후기 대입 학력고사는 2월 10일로 연기되었다.

당시에도 시험 연기에 대한 비판은 있었다. 단 1부 유실로 시험 전체가 연기되는 것에 대해 반발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후에 밝혀진 것이지만, 범인이던 대학교의 야간 당직 경비원은 평소 알고 지내던 교회 집사의 딸이 장학금을 받고 입학할 수 있도록 도울 심산으로 시험지를 훔치긴 했는데, 일이 커지니 두려워서 바로 불태워 버렸다고 털어 놓았다. 이런 해프닝으로 우리 사회는 엄청난 손실을 치렀다. 예비소집을 위해 올라와 있던 수험생들은 헛걸음을 치고 되돌아가야 했고, 학력고사 출제위원들은 20일을 더 붙잡혀서 문제를 재출제해야 했다. 많은 수험생들 및 출제 위원들은 2월 2일부터 시작된 설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수험 공부와 문제 출제에 매달려야 했고, 후기대 입시 관계자들 역시 합격자 발표 예정일인 2월 15일까지 불과 5일 안에 입학 사정을 끝마치고 합격자를 발표해야 했으며, 전문대 입시 관계자들도 일정 연기로 불과 3일이라는 촉박한 시간 안에 입학 사정을 마무리해야 했다. 덤으로 많은 대학들이 편입학 시험을 취소하거나 연기해서 도미노처럼 피해가 이어졌고 경제적 손실도 막대했다.

그러나 이 때에도 다수는 시험 연기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이 시험이 수험생들의 일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당시에는 대학의 전형방식도 다양하지 않았기에 시험 점수가 곧바로 대학의 당락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단 한 명의 부정 출발을 사회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 수능의 연기도 역시 기본적 맥락은 다르지 않다. 교육부에서 제일 먼저 명분으로 삼은 것은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시험장들이 있기에 학생들의 안전이 걱정된다는 것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연기 이유는 불공평한 시험 환경이 방치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었다. 영어 듣기 평가 시간에 비행기도 뜨지 못하는 나라에서, 불확실성을 방치한 채 혹시라도 시험을 강행하다가 형평의 원칙이 무너져 버리면, 평가의 신뢰성이 떨어지면서 그 후폭풍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학력고사가 수학능력시험으로 변화하게 된 방아쇠 중 하나가 92년 시험지 유출사건이었음을 반추해 본다면, 시험의 공평성과 평가의 권위는 어떤 사회적 손실을 치르더라도 정부가 보장해야 할 기본적 약속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당장은 부담이 있지만 일정한 경제적 손실을 치른다고 해도 공평과 권위를 지키겠다는 정부의 이번 결정은, 신속하고 과감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이번 결정은 대증요법일 뿐, 이번 혼란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92년도에 수없이 쏟아놓았던 질문을 25년이 지나서 다시 또 꺼내놓고 있는 이 상황이 왜 종료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전국 수험생들을 일렬로 줄 세우는 방법을 포기하지 않는 어른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엘리트들의 기득권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에서 혼란을 이슈로 보도를 쏟아내는 언론들이 제대로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학가는 방법이 완전히 달라지고 평가의 철학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에 이제는 우리 사회가 올바른 대답을 해야 한다. 25년 뒤에 다시 이 사태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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