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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특집] 김주혁, 그를 기억하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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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김주혁

[매거진M] 우리는 2017년 10월 30일 겨울의 길목에서 김주혁을 잃었다. 하나의 세계가 스러졌다. 그가 만들고 꿈꾸고 사랑한 세계. 30여편의 영화와 드라마. 우리는 오랫동안 그의 세계에서 행복했다. 재능있고 성실한 예술가였고, 품이 넓은 사람이었다. 배우 김주혁의 20년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게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김주혁과 함께한 동료들이 매거진M에 보내 온 그의 이야기 ②

※1부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중앙일보

'광식이 동생 광태' 촬영 현장. 카메라가 돌지 않는 리허설이었지만, 그는 취재진을 위해 '세월이 가면'을 열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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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전주, ‘YMCA 야구단’ 촬영장. 대현(김주혁)과 정림(김혜수)의 투숏. 조명 세팅하는 동안 두 배우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김주혁의 진지한 표정으로 봤을 때 그 장면의 목적이나 연기 톤에 대해 얘기하는 듯 했다. 흐뭇하기도 하고 작품에 대해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나 궁금해져서 헤드폰을 들어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 ‘누나, 에딘버러 가봤어요? 아는 사람이 갔다 왔는데 그렇게 좋대요. 거기 로컬 레스토랑에…(중략) 누난 가본 곳 중에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두 작품을 함께 했지만 현장에서 그가 ‘연기’에 관해 했던 얘기들은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시시덕거리며 수다 떨었던 기억만 난다. 맛집 이야기를 참 많이 했었지. 하지만 그가 작품을 건성으로 대하거나 심드렁하게 연기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연기에 대해 그가 느끼는 엄중함과 두려움이 그런 시답지 않은 얘기를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제야 깨닫지만 나는 그의 실없는(척 하는) 모습을 사랑했던 것 같다.

2005년 양평, ‘광식이 동생 광태’ 촬영장. 크랭크인 하고 얼마 안 지나, 투병 중이던 그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마음의 준비를 해왔었는지 그는 크게 동요하지 않은 채 장례를 치르고 현장에 복귀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광식(김주혁)과 광태(봉태규)가 부모님 산소를 벌초하는 장면을 찍게 됐다. 평소와 다르게 광식의 톤이 다운돼 있다고 느꼈지만 그에게 따로 얘기하진 않았다. 내 심중을 읽고 톤을 바꿔보려 애쓰는 그에게 난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광식이가 부모님을 많이 사랑했었나보지.’

그날 촬영 후 그가 전체 스태프에게 회식을 쐈다. 술 못하는 그가 서너 잔을 마셨으니 만취했을 것이다. 그리고 주섬주섬 아버님 얘기를 했다. 그에게 아버님은 늘 어려운 존재였으나 그제야 생각해보면 사랑했었고, 보고 싶다는 것. ‘주혁아, 라면 하나 끓여 와봐라’라는 아버님의 한마디에 군소리 없이 라면을 끓이곤 했다는 그의 얘기를 듣고 머릿속에서 떠올려 봤었다. 파자마 차림으로 소파에 누운 김무생 선생님 너머로 라면 냄비를 들고 있는 주혁의 투숏이 내가 직접 본 이미지처럼 지금도 각인돼 있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뵌 아버님이 또 라면 끊여달라고 하셨을까?

그는 나와 동갑이었고, 친구였다. 애매한 친분을 가진 사람들이 나를 ‘현석이’라 부르고 다니는 것 좋아하지 않지만, 주혁이가 그러는 것은 기분 나쁘지 않았다. 괜히 친분 자랑하느라 배우들 없는 곳에서 ‘00씨’ 라고 안하고 이름 함부로 부르는 것 혐오하지만, 주혁이 만큼은 거리낌 없이 ‘주혁이’라 부르고 살아왔다. 서로 없는 곳에서는 친구 행세를 하고 다녔지만, 정작 같은 자리에 있을 때는 호칭이 애매했다. ‘주혁씨’라고 부르긴 싫었고, ‘주혁아’라고 부르긴 쑥스러웠다. 나를 ‘감독님’이라고 부르진 않으면서도 ‘현석아’라고 할 순 없었던 그의 입장도 비슷해서, 우리는 최대한 호칭과 주어를 생략한 채 말을 시작했다가 어미를 얼버무려서 언뜻 반말 같지만 어찌 들으면 아닐 수도 있게 조치하며 대화를 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그가 잠든 서산에 다녀오려 한다. 그때 한번 불러보리라. ‘주혁아!’”

-‘광식이 동생 광태’ ‘YMCA 야구단’을 함께한 김현석 감독


중앙일보

&#39;YMCA 야구단&#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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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식이 동생 광태’ 시나리오를 줬을 때, 하루 만에 하겠다고 답을 줘서, 정말 고마웠다. 그가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려, 영화 두 편을 함께했지만 친해지진 못했다. 그럼에도 담백하고 따뜻한 사람이란 걸 현장에서 자주 느꼈다. 사석에서도 과장되게 행동하는 법이 없었는데, 그런 성격까지 광식 역에 맞춤하다고 생각했다.

김주혁 배우는 늘 과하지 않고 정확한 연기를 추구했다. 특히 발음과 감정 표현이 매우 정확했다. 대부분 어떤 배우가 뜨겁고 짙은 연기를 선보일 때, 상을 주며 칭찬하는데 이런 맥락에서 그는 상복이 없었다. 더 많은 모습을 보여줄 참이었는데 슬프고 아쉽다.

-‘YMCA 야구단’ ‘광식이 동생 광태’를 함께한 심재명 명필름 대표


중앙일보

&#39;사랑 따윈 필요없어&#39;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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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적과의 동침&#39;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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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멋쟁이였다. 억지로 꾸민 멋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멋이 묻어나는 사람. 센스를 타고 났달까. 그와는 2003년 광고 촬영 때 처음 만났다. 호주에서 열네댓 시간씩 버스를 타고, 각자 짐을 머리에 이고 눈 덮인 산길을 오르내리며 의류 화보를 찍었던 게 지금도 생생하다. 오래된 인연인 만큼 늘 그를 각별히 생각했는데, 평소 좀 더 살갑게 대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

사고 열흘 전 ‘흥부’ 포스터 촬영으로 남양주 세트에서 만났을 때 그가 그랬다. ‘어! 형, 오랜만이네. 오래하니까 이렇게 또 만난다. 우리 더 오래오래 하자’고. 그 특유의 어색한 몸짓과 웃음, 썰렁한 농담 하나하나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흥부’ ‘사랑 따윈 필요없어’ ‘적과의 동침’ 등의 포스터 작업을 함께한 이전호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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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광식이 동생 광태&#39; 포스터 촬영 당시




“끊임 없이 노력하면서도, 스스로에겐 박한 사람이었다.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기에, 너무 너무 잘하고 싶어 했다. ‘공조’는 오락영화여서 부담 없이 접근할 수도 있었을 텐데, 본인이 맡은 악역 차기성에 대한 고민을 한시도 놓지 않았다. 그도 나도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을 좋아했다. 그처럼 ‘실제 삶의 흐름이 느껴지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던 게 기억난다. 만나면 ‘언제 근사한 스파이물 한번 해보자’는 말을 특히 자주 했었다.

불과 일주일 전에 만났을 때도.밝은 성격 같지만, 사실 낯을 가리는 여린 사람이었다. 상대방이 불편한 게 싫어서 늘 애써 자기 성향을 눌렀던, 오히려 배려심이 많아 문제였다. 전화 통화를 할 때도, 내가 일하는 것 같으면 늘 3초 안에 끊곤 했다. ‘너 일하는 구나? (괜찮다고 말해도) 아니야, 다시 전화할게’라면서.

언제나 남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사람. 조수석에 탄 사람이 편안하게 느끼는 운전이 가장 좋은 운전이라고 말하던 사람. 현장에 있는 모두가 행복해야 안심할 정도로 사람을 많이 챙겼던 형. 늘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진짜’ 연기를 단 한 번만 해봤으면 좋겠어’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했던 배우. 많은 분들이 그를 오래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공조’를 함께한 김성훈 감독


중앙일보

&#39;공조&#39; 촬영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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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안에서 카 체이스 장면을 촬영할 때였다. 그가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어 총을 쏘는 장면을 찍는데, 촬영에 몰입하다 보니 차의 속도가 시속 120㎞까지 올라갔다. 모니터를 보고 있던 나는, 촬영 후 그 사실을 듣고 ‘위험하게 진행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랬더니 그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랬어요? 난 잘 모르겠던데…. 괜찮아요!’라고. 외려 미안해하며 나를 위로하는 느낌이었달까.

지금도 ‘공조’ 첫 미팅에서 ‘액션이 많나요? 나, 발이 이만큼밖에 안 올라가요’라며 발차기를 하던 모습이 선연하다. 같은 남자로서 부러울 만큼 무척 매력적이었고, 몇 마디 섞다 보면 바로 ‘팬심’이 들게 하는 배우였다. 많이 보고싶다.”

-‘공조’를 함께한 오세영 무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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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저택 살인사건&#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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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혁 선배가 연기한 남도진은 시나리오에선 모호한 구석이 많은 인물이었다. 지문에 없는 감정과 디테일을 살려낸 그의 연기로 남도진이 완전해질 수 있었다.연기는 두말할 것 없고, 작품과 캐릭터를 이해하는 능력도 탁월했다. 장 피에르 멜빌 감독 영화에서 볼 법한 힘 있는 캐릭터, 그리고 홍상수 감독 스타일의 힘을 뺀 캐릭터가 동시에 어울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만에 영화 현장으로 돌아온 내게 선배 영화인으로서 진심어린 조언도 많이 해줬다.감독이든 배우든 ‘걸작을 남기는 것만큼 꾸준히 현장에서 일을 하는 게 좋은 것 같다’는 말이특히 기억난다. 가장 의욕적으로 왕성히 일을 하던 때에 이런 사고가 생겼다는 게,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

-‘석조저택 살인사건’을 함께한 정식 감독


※3부에 이어집니다.

김주혁 필모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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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혁 필모그래피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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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혁 필모그래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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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백종현·고석희·김나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사진=중앙포토, 각 영화사·방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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