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8 (금)

초대형 IB, 모험자본 공급한다고? 은행권 "IMF 또 올라" 우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원리금 보장 자금으로 리스크 투자 쉽지 않아…미스매치 심각할 듯 "외환위기 단초 전철 밟을 수도"]

머니투데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금융위원회가 13일 한국투자증권에 발행어음 업무를 인가했으나 은행권은 초대형 IB(투자은행)가 취지에 맞게 모험자본을 공급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오히려 초대형 IB가 ‘제2의 외환위기’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위가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인 초대형 IB에 허용한 발행어음은 금융회사가 원리금을 보장하는 만기 1년 이내의 단기 금융상품이다. 은행권은 원리금을 보장해야 하는 돈을 리스크가 있는 신생·혁신기업에 대출하거나 투자하는게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신생·혁신기업에 돈을 대주다 떼이면 발행어음 투자자에게 원리금을 돌려주기 어려워질 수 있다.

초대형 IB도 이같은 사실을 알기 때문에 금융위 취지와 달리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돈을 안전한 곳에 쓸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고유동자산(현금성 자산/국공채 등)에 35%, 부동산에 30% 운영하고 대출에는 35%만 운용할 계획이다. 미래에셋대우는 발행어음 업무 인가를 받으면 기업대출에는 단 10%만 운영하고 △고유동자산 30% △부동산 20% △A등급 이상 증권 40% 등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1년 만기로 조달한 돈을 회수하는데 상대적으로 성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신생·혁신기업에 공급하면 자금의 미스매치도 심각해질 전망이다. 조달한 돈과 운용하는 돈의 만기가 다른 미스매치는 1997년 한국이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과거 단자회사를 중심으로 금융회사는 해외에서 1년 미만의 단기자금을 빌려 기업들에 장기 대출을 해주다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초대형 IB에 발행어음 업무를 허용하면 과거 외환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던 단자회사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말했다.

초대형 IB가 은행에 준하는 건전성 규제를 받으면 금융시스템의 위기를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초대형 IB가 받는 건전성 규제는 NCR(영업용순자본비율) 정도다. NCR은 영업용순자본에서 총위험액을 뺀 순자본을 금융위가 정한 업무단위별 필요유지 자기자본으로 나눈 수치로 100% 아래로 떨어지면 적기 시정조치 권고를 받는다.

문제는 초대형 IB나 일반 증권사나 필요유지 자기자본의 차이가 거의 없어 다는 점이다. 예컨대 지난 6월말 기준 미래에셋대우의 필요유지 자기자본은 1344억원으로 DB금융투자의 1344억원과 같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NCR 규제가 초대형 IB를 감독하는데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게다가 발행어음은 초대형 IB의 핵심 건전성 규제인 레버리지(신용)비율 산정에서 제외된다. 발행어음은 타인자본인데 레버리지 비율 산정시 부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금융위가 자체 개혁을 위해 발족한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의 윤석헌 위원장도 지난달 11일 금융위에 대한 1차 권고안을 발표하면서 “은행은 상대적으로 강한 자기자본규제를 받고 있는데 초대형 IB는 그렇지 않은 만큼 자기자본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발행어음으로 초대형 IB는 은행과 비슷한 여·수신 업무를 할 수 있게 됐지만 은산분리 원칙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은산분리 원칙 때문에 혁신이 저해 받고 있는데 이보다 규모가 훨씬 큰 초대형 IB가 은산분리 원칙을 적용받지 않는 건 규제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게 은행권 주장이다. 물론 한국투자증권은 은산분리 규제 대상인 산업자본이 아니지만 후에 산업자본의 진입이 가능한 만큼 형평성에 맞는 규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초대형 IB에 대해 발행어음 업무를 허용하는 건 은행업 라이선스 없이 은행업을 하도록 허용하는 것과 같다”며 “업권간 불평등, 건전성 규제 공백, 은산분리 원칙 무력화 등 수많은 문제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보호도 문제다. 발행어음은 예금자보호 대상이 아님에도 원리금 보장상품이다. 증권사 신용으로 원리금을 보장해준다는 의미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발행어음을 계기로 증권사가 원리금 보장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라며 “문제는 소비자들이 원리금 보장 상품과 예금자보호 상품을 혼동할 수 있다는 점인데 발행어음은 만에 하나 증권사가 망하면 원리금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학렬 기자 tootsie@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