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작가
한·중관계가 급속도로 복원되고 있다.
한국 대중스타의 결혼식과 걸그룹 공연이 실시간으로 중국TV에 생중계되면서 '금한령(禁韓令)'이 사실상 풀렸다. 사드 배치가 촉발한 한·중 갈등이 봄 눈 녹듯이 풀어지고 있다. 덩달아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화장품 회사들의 주가도 급상승하면서 한·중관계는 제2의 해빙기를 맞이하고 있다. 뚝 끊겼던 중국인의 한국관광도 재개되면서 제주도와 명동은 물론, 중국인 관광객이 큰손 노릇을 해 온 면세점업계도 한껏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주석은 지난 11일 정상회담을 갖고 사드 갈등에 대한 합의를 재확인하면서 양국 관계 복원 수순을 공식화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 1년6개월여간 전방위적인 사드 보복 조치로 우리 기업은 물론이고 우리 경제 전반이 입은 피해는 엄청났다.
문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우리 속담을 인용하면서 한·중관계가 사드 갈등 이전보다 더 견고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표했다. 매경한고(梅經寒苦, 봄을 알리는 매화는 겨울 추위를 이겨낸다)라는 중국 사자성어도 동원했다. 사실 한·중관계가 사드 갈등을 극복하고 복원의 단추를 꿰는 데에는 현 정부의 부단한 물밑 노력이 있었다. 문 대통령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노영민 전 의원을 주중대사로 임명한 것부터가 문 대통령이 얼마나 사드 갈등을 풀기 위해 노심초사했는지 엿보이는 대목이다.
우리 정부의 끈질긴 대중 접근이 사드 갈등 해법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향후 수년은 더 지속될 것 같던 중국의 사드 보복 기조가 하루아침에 해빙된 것은 무엇보다 중국 내부의 상황과 필요에 따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지난달 열린 제19차 당 대회를 통해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에 버금가는 1인 집권체제를 굳건히 한 시 주석이 집권2기를 여는 대한(對韓) 첫 조치로 내놓은 것이 사드 보복 조치 철회라는 점에서 여러 정치·경제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지난해보다 침체되고 있는 국내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한·중 교역관계를 정상화할 필요가 있었고, 이를 통해 시 주석이 당 대회를 통해 재차 강조한 ‘전면적인 샤오캉(小康,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실현을 차질없이 추진하는 계기의 하나로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사드 갈등이라는 한·중 간의 핵심 현안은 중국의 뜻대로, 마치 없었던 일처럼 해결됐지만 이번 사태는 미국을 대신할 수 있는 균형외교의 축으로 인식돼 왔던 중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해 줬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가 있다.
시간을 되돌려 한·중관계가 절정에 올랐던 2년 전 중국의 전승절 70주년행사 장면을 떠올려보자. 2015년 9월 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미국 등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 주석이 야심차게 준비한 전승절 70주년 열병식에 참석, 서방국가(우리가 서방 쪽에 속한다고 본다면) 지도자로는 유일하게 톈안먼 망루에서 시 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열병식을 지켜봤다. 박 전 대통령은 이 같은 역사적 장면을 연출하면서 ‘한·미·일 동맹’이라는 기존의 우리 정부의 외교행태에서 벗어나 균형외교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그리고 시 주석과 중국정부의 각별한 배려를 받는 등 한·중관계는 수교 이후 최고의 정점에 다다랐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한·중관계는 그때 받았던 박 대통령에 대한 시 주석의 예우와 중국매체의 찬사뿐, 실질적인 외교적 진전은 그다지 없었다. 그뿐이었다. 절정으로 치닫던 한·중관계는 정부가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벼랑 끝으로 몰렸다. 중국은 사드 배치 결정 전 엄포를 놓다가 성주 사드 배치를 공식화하자, 유사시 한반도를 선제 타격할 수 있다는 군사적 대응방안까지 노골적으로 제기하고 중국에 진출한 롯데 등 우리나라 기업에 대한 전면적인 보복을 서슴없이 해왔다.
사드가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북한 핵을 억제하기 위한 방어수단이라는 우리 정부의 설명은 먹혀들지 않았다. 북한이 ICBM급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미국을 자극하고 급기야 9월 초 6차 핵실험을 재차 강행했는데도 비난성명 한 줄도 내지 않았던 것이 중국이다.
어쨌든 중국이 자세를 바꿈에 따라 한·중관계는 다시 사드 갈등 이전 수준으로 해빙기를 맞이하게 됐다. 그러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중국 측에 약속한 ‘3불’ 조건이 파기됐다고 중국 측이 판단하는 순간, 한·중관계는 또 예기치 않은 순간 새로운 갈등으로 접어들 수도 있는 ‘리스크’는 상존한다. 사드 갈등 해법이 뇌관을 완벽하게 제거한 수준이 아니라 언제든지 살아날 수 있는 휴지(休止)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구하는 균형외교 혹은 다변화외교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 간의 양적인 균형이나 줄타기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사드 갈등을 극복하는 한·중관계 복원은 아직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정부의 대중외교라인 구축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중국과 중국인의 인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중국 인맥을 최고위 정책라인에 기용·참여시켜야 한다.
중국에서 관시(關係)는 최고지도자 간뿐만이 아니라 양국 국민들 간에 시간을 두고 이어지고 쌓이는 ‘신뢰’에서 형성된다. 관시는 이익을 서로 주고받는 관계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관시 형성 없이는 한두 번의 이벤트를 넘어서는 국가 간의 '후리궁잉(互利共赢, 서로 이익을 주고 함께 이기는 관계·win-win)'은 불가능하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작가
박상훈 bomnal@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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