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프린스턴대 교수, “영화 ‘아가씨’ 보자” 자택 유인해 한인 유학생 성희롱
한달 새 두 번이나 신체접촉 연달아 시도
학교측, 고작 ‘8시간 훈련’ 솜방망이 처벌
“추가 피해자는 없어야” 공론화 적극 나서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캠퍼스. 프린스턴대 웹사이트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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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명문 프린스턴대의 한 교수가 한국인 유학생에게 단둘이 영화 ‘아가씨’를 보자는 명분으로 성희롱 했음에도 학교 측의 경고성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 피해 학생은 다른 학생들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강력한 대처가 필요하다며 이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미 온라인매체 허핑턴포스트는 9일(현지시간) 프린스턴대 대학원생 임여희(26)씨가 올해 초 지도교수로부터 성희롱 피해를 입은 후 문제 해결을 위해 분투한 사연을 소개했다. 부산 출신의 임씨가 국내에서 전자공학 석사과정을 마친 후 유학길에 오른 때는 2015년 8월. 그는 한 학기 후 학계 권위자인 세르지오 베르두 교수에게 지도를 받게 됐다. 하지만 올해 2월 베르두 교수는 한국 영화 ‘아가씨’를 보자며 임씨를 자택으로 데려간 후 어깨 등에 신체 접촉을 시도했다. 임씨가 문화적 차이, 교수와의 관계 등으로 인해 혼란을 겪는 사이 베르두 교수는 약 한달 후 영화 ‘올드보이’를 보자며 같은 상황을 만들었고, 이곳에서 또다시 임씨의 다리와 배를 만졌다. 당시 임씨 앞에는 교수가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이 버젓이 놓여있었다.
임씨는 두차례의 사건 후 교수에게 불쾌감을 표시했고 그의 사연을 들은 또다른 교수는 4월 대학 당국에 이를 고발했다. 학내 성폭력 문제 해결을 담당하는 ‘타이틀 9’(교육 관련 남녀차별을 금지한 미 연방법) 사무처는 이후 2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교수의 가해 사실을 인정했다. 당국은 6월 임씨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조사단은 해당 교수가 성에 기반해 불쾌한 언어적, 신체적 행위로 학생의 수학 경험을 방해했음을 확인했다”며 “베르두 교수에게 대학의 성차별 및 성 관련 직권남용에 관한 정책을 위반하고 성추행을 저지른 책임을 묻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학 측의 처벌은 베르두 교수에게 8시간의 ‘훈련’을 명령하는 데 그쳤다. 임씨에 따르면 학교 측은 “학생이 교수에게 부적절한 행위를 했음을 지적했을 때 그가 추가적인 행동을 멈췄다”고 설명했다. 베르두 교수는 관련 학계에서 수십 차례 수상 경력이 있는 권위자로, 이번 학기에도 강의를 진행 중이다.
임씨는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자신의 피해를 동료 학생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12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교수와 나의 권력관계”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지도교수가 학생의 학위, 장학금 등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구조다”라며 “프린스턴대에서 교수의 성추행 사례가 아직 알려진 적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가벼운 처벌로 끝난다면 다른 학생들도 계속해서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용기를 낸 이유를 밝혔다. 임씨는 “피해자로서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며 본보에 실명 공개를 요청했다.
미국 프린스턴대 한국인 유학생 임여희씨가 지도교수의 성희롱과 이에 대한 학교의 미온한 대처 사실을 알리기 위해 페이스북에 작성한 글(왼쪽 사진). 오른쪽은 지난달 2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성폭력 규탄 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이 손바닥에 성폭력 고발 캠페인 '나도 당했다(#MeToo)' 구호를 적어 보이는 모습. 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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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임씨의 학내 고발 과정에서 추가 성폭력 피해자도 확인됐다.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데보라 프렌티스 프린스턴대 학장은 조사 과정에서 베르두 교수가 다른 여성들에게 “광범위한 (성희롱) 혐의”를 저질렀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임씨는 “내 커리어에 대해 막강한 힘을 가진 교수들에게 이용 당해도 많은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맞설 수 없는 사회에서, 내 이야기가 같은 고민을 하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정신적 지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베르두 교수는 허핑턴포스트 측에 성희롱 사실은 일절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프린스턴대 역시 “학교는 어떤 성적 위법 행위도 심각하게 다루고 있으며 이번 사건에 있어 필요한 상담과 함께 (적절한) 처벌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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