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우승하던 국제기능올림픽 中에 내주고 2위로 내려앉아
제조업 기초 기술 뒤지기 시작해… 역전 신호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조중식 디지털뉴스본부 취재팀장 |
모르고 지나쳤다. 으레 우승하던 것이라 올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아니었다. 중국이 우승이고 한국은 2위였다. 지난달 끝난 국제기능올림픽 이야기다. 중국은 한국(8개)의 두 배 가까운 15개 금메달을 휩쓸었다. 우승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제대로 보도한 신문·방송이 드물었다. 그러나 우승보다 더 충격적인 뉴스다. 제조업의 뿌리 기술부터 중국에 역전당하고 있다는 신호다.
기능올림픽은 제조업 현장의 기초 기술로 경쟁한다. 선반·금형·용접·자동차 정비·목공에 벽돌 쌓기 분야도 있다. 기계화·자동화되고 인공지능이 도입되는 시대에 전통 기능 기술이 뭐가 대수일까. 모르는 소리다. 산업 현장의 말단에선 여전히 숙련된 기능인이 예민한 감각과 손기술로 깎고 다듬어야 하는 가공 단계가 있다. 그 단계에서 극미(極微)한 오차가 뛰어넘기 어려운 격차를 만든다. 한국은 경제의 규모와 자본력에서는 뒤지지만 각 기술 단계에서 앞서기에 중국과의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기술의 말단부에서 뒤집히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인들이 현장에서 전하는 한·중 역전 현상은 훨씬 절박하다. 유명 아웃도어 업체 회장의 이야기다. "대형 자수 자동화기계 10대를 중국 것으로 순차 도입했다. 초기 제품에서 불만스러운 점을 지적했더니, 다음에는 개량한 것을 납품하더라. 뭐가 고장 났다고 하면 즉각 출장 와서 해결해줬다. 그런 식으로 몇 차례 반복하니 1년이 지나서는 처음 것과 완전히 다른 기계를 납품했다. 우리가 요구하지 않았고 상상도 못했던 점까지 개량했더라. 현장에서 부딪치고 시행착오를 겪더니 한국 것보다 월등한 제품으로 혁신을 했다. 중국 기술자들은 악착같고 헝그리 정신이 있다. 옛날에는 우리가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국 업체는 개량 요구를 잘 안 들어줬다. 완성된 제품을 그대로 사가라는 식이었다. 한때 세계 1위였던 그 한국 업체, 나중에 부도 났다."
지난 2013년 7월3일 독일 라이프치히 무역전시센터에서 열린 제42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개회식에서 한국 선수단이 태극기를 휘두르며 입장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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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의 현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제조업, 특히 현장을 기피하는 현상은 오래됐다. 기업인 2~3세들조차 제조 업체 물려받기를 꺼린다. 하물며 기름때를 묻혀야 하는 기술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정부 정책도 제조업은 한참 후순위다.
한국이 기능올림픽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다고 하지만 뿌리 기술은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 취약하다. 산업 현장에서 흔하디흔한 밸브·베어링은 대표적인 뿌리 기술 제품이지만, 세계적인 밸브 업체 전직 한국 대표는 "한국은 아직 제대로 된 밸브·베어링을 못 만든다"고 했다. 베어링은 한마디로 쇠구슬이다. 완벽한 구체(球體)에 가까울수록 기계의 효율성이 향상된다. 하지만 쇠구슬을 완벽한 구체로 가공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밸브도 마찬가지다. 밸브는 기체나 액체처럼 유동(流動)하는 물질의 흐름을 제어한다. 미세한 틈으로 누출이 발생하면 공정을 망치거나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흐름을 제어하며 그 틈을 완벽히 방지하는 밸브 제작은 간단한 기술이 아니다. 온도와 압력에 따라 유동 물질이 어떻게 변하고, 그것이 흘러가는 배관은 또 얼마나 팽창·수축하는지, 각각의 물성(物性)에 대한 축적된 지식 없이는 어렵다. 원전과 대형 화학플랜트에 들어가는 핵심 밸브 제작은 그래서 뿌리 기술이지만 첨단 기술이기도 하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떤 혁신도 생산 현장과 괴리되어서는 성공할 수 없다. 그 현장에선 타협하지 않고 극한을 추구하는 집념을 가진 기술자가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 차이가 경쟁력의 격차를 만든다.
기능올림픽 성적이 뿌리 기술 수준을 다 말해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더라도 제조업의 밑바닥 기술 승부에서 울린 한·중 역전의 신호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외교 현장에서 근육질을 과시하는 중국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도 굴욕적인데, 제조업 기술마저 우리가 뒤지는 상황을 상상하면 끔찍하다.
[조중식 디지털뉴스본부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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