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
2009년쯤엔가. 낯선 남자로부터 뜬금없는 전화를 받았다. "저 '○○○게이트'의 C입니다. 조 선생님 책을 감옥에서 많이 읽었습니다. 이제 감옥에서 나왔는데(그는 얼마 전 횡령 혐의로 다시 감옥에 들어갔다) 제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실 만한 영험한 도사님 좀 소개해 주세요." "그렇다면 청담동 K 도사님을 찾아가세요."
K 도사는 본인 팔자에 물이 없어서 물 수(水)가 들어가는 담(潭)자 지명을 좋아한다. 나중에 들으니 K를 찾아온 그에게 '뜨거운 사막의 나라로 가라. 거기에 당신의 활로가 있다'라는 점괘를 뽑아주었던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 그의 팔자는 홍수가 나서 둑이 무너지는 대하(大河) 팔자였다. 물이 이렇게 많으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다. 아마추어 수준인 나는 '불(火)이 도움이 된다' 정도의 총론적인 내용은 말해줄 수 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구체적인 처방은 못 내린다. 프로인 K 도사는 '사막으로 가라'는 구체적인 처방을 내렸던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반대파 숙청 과정에서 지난 4일(현지시간) 체포된 억만장자 알왈리드 빈탈랄(62·사진) 왕자. 6일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빈탈랄 왕자는 압둘아지즈 사우디 초대 국왕의 손자이자 살만 국왕의 사촌으로, 자산 규모가 180억 달러(약 20조원)에 이르는 아랍권 최고 부호다.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투자가 중 한 명으로 '사우디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빈탈랄 왕자의 갑작스러운 체포가 주요 글로벌 기업 투자에 미칠 영향 등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
K는 '옥추경(玉樞經)'의 주문을 100일 동안 외우고 나서 영발이 열렸다. 프로와 아마가 여기서 갈린다. C는 점괘를 보고 사우디 왕자인 알 왈리드를 찾아갔다. 가수 마이클 잭슨의 소개로 알왈리드 왕자를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부자인 알왈리드는 데리고 간 C의 쌍둥이 아들 2명에게 사탕 사 먹으라고 각각 1억원씩을 주었다고 한다. "알왈리드 왕자를 만나보니 그가 무슨 철학이 있습디까?" "네 있어요. '마크 툼'이에요. 말끝마다 마크 툼이라고 해요." '마크 툼'은 '네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염라대왕 장부에 팔자가 이미 기록되어 있다는 뜻이다. 인생의 큰일, 또는 성공과 실패가 이미 하늘로부터 정해져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알왈리드는 말만 왕자였지 부모가 일찌감치 이혼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베이루트의 뒷골목에서 10대 시절을 보낸 문제아였다. 그렇지만 '나중에 큰돈을 벌게 되는 운명'이라는 아랍 영발도사들의 예언을 믿고 컸던 모양이다. 이번에 신문을 보니 사우디에서 '왕좌의 게임'이 발생하여 그 돈 많은 알왈리드 왕자도 체포되었다고 한다. 알왈리드의 팔자는 어떻게 될까? 팔자의 형성에는 수많은 인연이 작용한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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